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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람 에세이 91번째 편지 

선생님이 주신 귤의 의미

글 : 이서진(참사람 독자)

중학교 1학년 14살. 나는 지독한 사춘기에 시달렸다.

관심사는 오로지 친구뿐이었다. 놀다 보면 집에 늦게 들어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공부에는 흥미가 없으니 성적도 바닥으로 떨어졌다. 부모님은 화를 내셨지만, 굳게 닫힌 내 마음의 문 앞에서 번번이 좌절하셨다.

당시 담임 선생님은 첫 발령을 받은 새내기 담임교사였다. 반 아이들을 각별하게 생각하고 애정을 쏟는 분이셨다. 청개구리처럼 자꾸 엇나가기만 하는 내가 신경 쓰이셨는지, 항상 나를 챙겨주셨다.

나는 선생님과 남들보다 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때마다 선생님은 내 하찮은 이야기까지 귀 기울여 주셨다. 매번 교무실에서 면담을 나누는 게 귀찮다고 느껴질 만큼.

그러던 2학기 어느 날, 친한 친구들과 크게 다퉈서 사이가 멀어졌다. 나와 친구들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는 마침내 담임 선생님에게까지 포착됐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사건이 발생했다. 싸운 친구에게 빌려줬던 물건을 돌려받고 있는데, 갑자기 한 친구가 대뜸 나에게 욕설을 뱉었다.

순간 나는 그 애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휘둘렀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른 건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수업 종이 울리며 상황은 대충 일단락되었다. 교실로 돌아갔지만,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종이 치자마자 곧장 담임 선생님께 달려가 이실직고했다. 그 이후 나는 학생부장 선생님께 불려가 아주 긴 대화를 나눠야 했다. 무척 혼이 났다.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릴 수도 있다는 말에 창피함과 죄책감이 뒤섞인 눈물이 뚝뚝 흘렀다. 겁이 나고, 너무 후회됐다.

집에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참을 울기만 했다. 끊임없이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왔지만, 발신인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휴대폰을 멀리 던져버렸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초인종이 계속 울렸지만, 그마저도 무시해버렸다.

한참 뒤 확인한 핸드폰에는 담임 선생님 번호의 부재중 전화가 연달아 찍혀있었다. 아, 초인종을 누른 게 선생님이셨구나. ‘현관문 고리에 귤 한 봉지를 걸어두었으니 먹고 기운 차리라’는 문자가 함께 와있었다. 멍하니 다음 문자를 열어 본 나는 왈칵 튀어나오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담임 선생님이 서진이를 많이 아끼시나 보다. 아까 우리에게 찾아와 무릎까지 꿇으시며 서진이가 선도 처분받지 않도록 해달라고 하셨다.

학교폭력위원회는 열지 않기로 했다. 이번 일 많이 반성하도록 하고 담임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 가지도록 해라.'

-학생 부장 선생님

눈물 콧물로 범벅된 얼굴로 현관문을 살짝 열자, 정말로 문고리에는 묵직한 검정 비닐이 걸려 있었다. 안에는 귤이 가득했다. 차가웠다. 훌쩍거리며 껍질을 까서 입안에 귤을 넣었다. 새콤하고 달다가 신맛이 났다.

다음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울음을 그치고, 부모님에게 야단을 맞고, 다음 날 학교에 가서 친구와 사과를 하고……. 요란한 중학교 1학년을 그렇게 마무리했던 것 같다.

유난히 추웠던 2014년 겨울, 귤 한 봉지를 들고 날 기다린 선생님은 어떤 마음이셨을까. 문 앞에서 발걸음을 돌려야 했을 선생님의 마음을 생각하면 눈물이 핑 돈다. 반항심으로 똘똘 뭉쳐 가시 세우던 못난 내 모습을 외면하지 않았던 담임 선생님.

선생님이 두고 간 귤 한 봉지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삶에 큰 울림을 준다.

우리는 자주 방황한다. 순간적인 감정에 휩쓸려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고 그로 인한 후회로 힘들어한다. 방향을 잃고 헤맬 때마다 더 나은 곳으로 나를 이끌어주던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힘들어하는 누군가의 곁을 묵묵히 지키며, 귤 한 봉지를 건네는 존재가 되고 싶다.

9년 전 선생님이 나에게 가르쳐주신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