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람 에세이 50번째 편지
나그네 인생 다할때까지!

글 : 강신희(참사람 독자)

내가 생각하는 참사람이란 ‘정직하고 성실하며 타인에게 모범이 되는 인품을 지닌 분이다. 지인 중에 참사람이 있어서 나역시 덤으로 행복해진다. 

자원봉사 전문가로 노년에 삶을 보람되게 보내고 있는 한 분이 있다.
그는 은퇴 후 일년 정도 아무 일 없이 쉬고 있었다.  그러다 2002년 서울시 자원봉사센터의 월드컵 통역안내 봉사자 모집에 선정되었다. 그 전까지 자원봉사에 대하여 무지하고 관심도 없었다. 그랬던 그가 자원봉사에 빠지게 된 동기는 월드컵 통역안내 때문이었다. 상암월드컵 경기장에서 귀빈들이 경기장 출입 시 안내 및 통역을 맡았다. 그 곳에서 외국방송국 취재팀과 월드컵 조직위원회 진행요원들이 실랑이를 벌였다. 진행요원 자원봉사자와 방송사팀이 송출문제로 주차금지구역에 취재차량을 주차했기 때문이다. 서로 옥신각신 언어 소통이 되지 않았다.

그에게 긴급요청이 왔다. 급하게 달려가서 재치 있는 통역으로 문제를 말끔히 해결하였다. 그 일로 인해 뿌듯한 기쁨을 맛본 그는 서울의료원 외국인 안내 및 통역, 법원에서 이혼가정 다문화 가정, 강남구청 법률 사무소 통역, 강남구자원봉사센터 영어부 활동, 국제 마라톤 경기장 통역, 국제무역센터 행사, 국제행사 때 마다 선발대로 매번 참석했다. 다양한 봉사활동을 할 때 단원들에게 선배로서 살뜰하게 챙겨 주었다.

그는 평소 아침 식사 후 어김없이 직장 생활할 때처럼 봉사지역에 매일 출근하였다. 건강관리는 평소부터 좋아하던 마라톤과 등산 등으로 하였다. 가장의 역할 또한 충실하였다. 그는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하는 재미를 붙여 삼각지 미8군에서 16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였고 사우디아라비아로 이직을 해서 만 13년을 외국에서 근무했다. 자녀, 가정 모두 남부럽지 않게 행복한 삶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침에 출장 다녀온다는 아들의 말을 듣고 봉사하러 집을 나섰다.  그날따라 아들이 다정스럽게 아버지 잘 다녀오라는 말을 하며 꼭 껴안아 주었다. 그날은 유별나다 싶었다. 평소와 같이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현장으로 출근을 했다.

오후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강원도 모 병원에 아들이 있다는 통보였다. 평소 아들은 오토바이를 좋아했다. 그날 아들은 강원도에 행사가 있어서 차 대신 오토바이를 타고 갔다. 서둘러 병원으로 갔다. 그리 환하게 웃어 주던 그 얼굴이 아니었다. 달려가 와락 아들의 몸을 끌어 안으니 이미 그의 몸은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아들은 대형트럭과 정면충돌했다고 한다. 온몸의 힘이 쭉 빠지고 다리가 떨려서 한 발짝도 걸을 수 없었다. 아침에 정답게 인사하고 헤어진 아들이 죽을 줄 상상이나 했을까! 하늘이 무너지는 듯 앞이 캄캄했다.

“왜 하필이면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애지중지 키운 내 새끼가 이리 갑자기 떠나 갈 줄이야!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이제 막 40대 왕성하게 활동할 나이에 데려 가시다니 이건 너무합니다! 내는 어찌 살라고... 이럴 수는 없습니다!” 너무 큰 충격에 삶의 의욕과 의미도 잃어버렸다. 사랑하는 아들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고통 속에 지내던 어느 날 문득 그의 가슴 속에서 뜨거운 무엇이 느껴졌다.
'너는 그동안 자원봉사활동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 주지 않았느냐? 그동안 위로했던 것이 거짓이었단 말이냐? 언젠가는 그곳에 갈 텐데 너무 실망하지 말자! 모든 것은 하느님의 뜻이다.'라는 맘이 들었다. 아픈 맘을 가슴 속에 묻고 예전에 활동하던 곳으로 돌아갔다. 주변에 모든 사람들은 행복해 보이는데 너무나 허탈하고 무기력했다. '삶이 보람되기 위해서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으니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큰 위안이 되었다. 

주변의 봉사자들은 그가 우울해지지 않도록 수시로 연락하며 혼자 집에 있지 않도록 신경들을 써 주었다. 덕분에 점점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아들아! 험난한 나그네 인생을 마치고 가는 그날, 다시 만나자” 그의 모습은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80을 넘은 나이지만, 지금도 필요한 곳이 있다면 어디든지 달려간다. 문제가 있는 곳에 소통을 시켜줌으로 막혔던 혈이 원활하게 돌아 건강하게 되는 것처럼 오늘도 자원봉사활동으로 가슴의 한을 씻는다. 남은 생명 다할 때 까지 자원봉사전문가로 살다가 아들이 있는 그곳으로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