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람 에세이 52번째 편지
그랜저 한 대를 입에 담고 사는 행복

글 : 권오용(참사람 독자)

 

화전민의 후예들이 산을 뜯어 먹고 사는 내 고향 영양군 수비초등학교.
4학년 때 이O구 총각선생님이 초임으로 우리 담임이 되었다. 젊은 기운이 온몸에 가득 배인 선생님은 전교생의 우상이었다. 힘찬 날갯짓을 가르치고 세상을 올곧게 보고 넓게 보는 눈을 가르쳐 주기 위하여 혼신의 힘을 쏟으신 것 같았다.
“여러분의 부모들은 농사를 짓고 배고픈 나날을 보내지만 여러분은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희망을 주고 격려해 주는 말씀에 어린 맘에도 귀가 솔깃했었다.

교과서와 공책 1권 그사이에 연필을 끼워 메고 학교에 다녔다. 학교에 다니는 것이 아니라 놀러 가는 수준이었다. 학교에 오가면서 물고기 잡고 가을이면 송이 따러 길도 아닌 산을 헤매며 다녔다. 먹을 수 있는 것을 찾아다녔고, 유일한 낙이고 일과였다.

선생님은 아침마다 용의 검사를 철저히도 했었다. 짜증이 날 정도로.
산골의 겨울은 유난히도 일찍 오고 또 길었다. 쇠죽을 끓인 솥에 잉걸불이 남으면 물을 데워 손발을 씻었고 목욕은 생각도 못 했다. 여름이 와야 냇가에서 겨울 동안 묵은 때를 벗기는 정도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미개인이 없었다. 이러니 이와 서캐는 얼마나 많은지 검정 옷 위로 마구 기어 다녀도 별 흉이 안 되었다.

목욕 시설이 전혀 없는데도 선생님은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용의 검사를 했다. 일요일 날 꼭 목욕을 하고 오라는 것이다. 목욕한 흔적이 없으면 일주일 동안 청소를 시켰다. 큰 솥에다 물을 데우고 부엌에서 어머니가 목욕을 시켜주셨다. 부엌에 장작 불은 훨훨 타지만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얼마나 추운지 이빨이 딱딱 물렸다. 그러나 청소를 시키니 안 씻을 수가 없었다.

곁들여 아침마다 이빨 검사를 했다. 먹은 것도 변변치 않은데 양치질을 했는지 검사를 했다. 칫솔이 없으니 징검다리를 건널 때 고운 모래를 손으로 찍어 이빨을 대강 문대고는 냇물로 입을 헹구는 정도였다. 아침 학교 갈 때마다 이빨 닦는 시늉을 내는 아이는 우리 반뿐이었다.

당시 우리는 이를 닦지 않아 이의 안팎에 누렇게 이똥이 끼어 있어 김치 냄새와 반찬 냄새가 많이 났었다. 우리의 이러한 사정을 아시는 선생님은 하루는 칫솔을 사 가지고 와서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처음 만져보는 칫솔이었다. 지금 나누어 주는 칫솔로 매일 빠짐없이 양치질하라고 부탁했다. 치약은 없으니 부엌에 있는 소금은 곱게 빻아서 치약 대신 사용하면 된다고 했다. 우리 집에서 칫솔로 양치질을 하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이빨을 자주 닦으니 기분도 좋고 개운하여 좋았다. 아침 조례시간에 이빨 안 닦고 온 사람 일어서라고 하고는 학교 우물에 가서 씻고 오라고 보냈다. 몇몇 아이들이 투덜대면서 나갔지만 얼마 지나니 전부 잘 닦고 왔다. 한 학기가 지나니 이똥이 끼어서 누런 이빨은 우리 반에는 없었다.

지금 생각하니 당시로는 생각도 못 했을 위생관념을 선생님이 일깨워 주었다. 정말 고맙고 감사할 일이다. 그 칫솔로 대만 남을 때까지 열심히도 닦았다.

용의 검사와 이빨 검사뿐 아니라 늘 반 아이들과 함께했다. 청소는 물론, 놀이까지 함께했고, 우리가 있는 곳에는 저만큼 멀리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셨다. 요사이 말하는 사제동행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청소를 같이하면서 늘 말을 먼저 걸어오신다. 누구와 가장 친하냐? 오늘 아침은 뭘 먹었느냐? 장래 희망은? 하도 집요하게 묻기에 처음에는 선생님 곁으로 가기 싫었다.

당시 학교 운동장 구석에 큰 솥을 걸어놓고 옥수수 가루로 죽을 쒀서 아침을 못 먹고 오는 아이들에게 한 그릇씩 주었다. 선생님은 자기가 준비해온 도시락은 밥을 못 먹은 것 같은 아이에게 주고는 대신 강냉이 죽으로 우리와 함께 등나무 아래에서 같이 먹었다.
평생에 등대가 되신 선생님을 만난 것이 큰 행운이고 축복이었다.

지금도 튼튼한 이빨을 자랑한다. 스캘링 하는 것 말고는 아직 치과에 간 일은 없다. 치과 의사도 이빨 관리를 잘 했다고 칭찬을 한다. 선생님께 칫솔 하나를 선물 받은 후로 열심히 닦았고 치아관리에 신경을 많이 쓴 덕인듯하다.

몇 년 전 경북 교육청에서 옛 스승 찾기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대구에 계시는 선생님을 동창회에 초빙했다. 그 활기찬 모습은 간곳없고 곱게 늙으신 선생님은 환한 웃음을 지으시면서 고희를 앞둔 제자들을 하나씩 기억을 더듬으며 회상하려고 했다. 산촌 학교 초임 발령을 받은 것이 교직 생활에서 가장 보람 있었다고 회상하셨다. 눈물이 왈칵 나왔다. 동창회장이 선생님 본받으려고 우리 동창 중에 교직에서 평생을 보낸 친구가 4명이나 된다고 소개하고 일어서라고 했다. 큰절을 했다. 선생님 눈에서도 눈물이 비쳤다.

모임의 화제는 단연 용의 검사와 칫솔을 사주신 것으로 모아졌다. 그때 깨끗하게 씻은 몸으로 이제까지 건강을 지킬 수 있었다는 얘기. 여러 남매 중에 유독 자기만 씻어주어서 다른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은 얘기도 있었다. 나와 몇몇 친구들도 그때부터 이빨 관리를 잘해서 한 번도 치과 신세를 안 졌다는 얘기를 했고 박수를 받았다.

이빨 관리를 못 해서 임플란트를 많이 했다고 한탄하듯 이야기하는 동료가 있었다. 그러면서 그것을 돈으로 환산하면 그랜저 한 대 값이라고 한다. 이O구 같은 선생님을 못 만난 불행으로 알라고 속으로 핀잔을 주었다. 그랜저 한 대를 입에 담고 사는 불행이다. 먹을 것이 아무리 많아도 치아가 튼튼하지 않으면 먹을 수가 없다. 이 얼마나 큰 불행인가? 학교에 근무해 보고야 알았지만 당시에 근무환경이나 보수도 변변치 못했을 선생님이 칫솔을 반 아이들에게 다 사 주신 일을 다른 사람이면 상상도 못 했을 것 같다. 모든 어려움을 사랑으로 감싸주시고 몸소 실천하셨다.

지금도 가끔씩 고향에 갈 일이 있으면 학교 앞에 차를 세우고 운동장을 한 번 쭉 둘러보곤 한다. 우리들이 배고파서 강냉이죽을 맛있게 먹던 등나무는 아직도 있다. 그러나 텅 빈 운동장은 아이들 소리는 들리지 않고 태극기만 펄럭이는 것을 본다. 마음이 울적하다. 너무나 풍요롭기에 음식의 고마움을 모르고 자라는 아이들이 많다. 그리고 나 자신을 비롯하여 참 스승도 그때만큼 많지는 않을 것 같다. 큰 느티나무가 동네를 지키듯 일생의 등대가 되고 먼발치서라도 어린 동심을 지켜주는 선생님은 꼭 있어야 한다. 이O구 선생님 같은 참사람. 참스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