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람 에세이 62번째 편지 
타인에게 말 걸기

글 : 안선영(참사람 독자)

남편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평소 즐겨 찾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얼마 전에 본 짧은 글이 묘하게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을 중학생이라고 소개한 한 회원이 “왜 세상은 이렇게 어둡고 힘들기만 한 걸까요? 인생이 참 허무하네요.”라고 적어놓았다는 것이다.
내 눈에는 크게 대수롭지 않아 보였지만, 남편은 “어린 나이에 왜 이렇게 염세적인 삶의 태도를 갖게 되었을까” 하고 걱정했다. 

한참을 망설이던 남편은 비밀 댓글에 “아니에요, 인생은 허무하지 않아요. 그래도 한번은 살아 볼 만한 게 인생 아닐까요?”라고 적었다. 하지만 그 후로도 학생은 “사는 게 너무 지치고 힘들어요. 점점 살아갈 용기가 사라집니다.”라거나 “이쯤에서 그만 모든 걸 내려놓았으면 좋겠어요.”라는 등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글을 지속적으로 올렸다.

상황이 이쯤 되니 이 학생과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초등학생 아들을 둔 부모의 입장에서 남편도 더는 모른 척 할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남편은 고민 끝에 “괜찮다면 학생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같은 사이트에서 만난 것도 인연인데 인생 선배로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비밀댓글을 달았다. 

다음날 그 학생의 글이 다시 올라왔다. 스스로 장애를 가진 남학생이라고 밝힌 그는 1년 전까지만 해도 남들처럼 그저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큰 교통사고를 당해서 대수술을 받은 후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하반신 불구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몸이 불편한 상태로 학교를 계속 다닐 수는 없어, 현재 학교를 자퇴하고 집안에 틀어박혀 외롭게 지내고 있었다. 남편은 내게 “상황을 듣고 보니 그 학생이 삶에 대해 그토록 염세적인 것도 충분히 이해가 돼!”라고 했다. 

학생의 얘기를 들으면서 남편은 다리 절단장애인인 아버지를 떠올렸다고 한다. 시아버님은 28년 전 사료공장에서 일을 하시다가 사료 기계에 다리가 빨려 들어가 오른쪽 무릎 하퇴부가 절단되는 사고를 겪으셨다. “지금보다 장애인에 대한 시각이 엄혹했을 때였다”며 남편은 그 당시를 회상했다. 동네 아이들은 시아버님을 절름발이라고 놀렸고, 남편은 어린 마음에 한때나마 아버지를 창피하게 여기기도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아버님은 의족을 차고 회사에 복직해 끝까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셨다. 

남편은 무언가를 결심한 듯 그 중학생에게 시아버님의 과거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장애인이 된 후로도 한 번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셨던 얘기, 불편한 몸으로 길가에 쓰러진 할머니를 구한 얘기, 더 건강해지기 위해 걷기 운동을 시작한 얘기들을 들려주었다.

“세상은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아요. 하지만 내가 세상을 어둡게 바라보면 내 눈에는 항상 세상의 어두운 면만 보이는 법이에요. 어렵다는 거 알지만 밝고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새로운 희망이 생길 거예요. 이건 내가 아버지를 통해서 깨달은 사실이죠.”
 

그런데 댓글을 달고 나서 남편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얼굴도 모르고 상황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인터넷이라는 익명성에 기대서 괜한 말만 늘어놓은 건 아닐까 걱정이 된다고 했다. 게다가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상대에게 진심과 감정을 올바로 전달할 수 있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다행히 남편의 진심이 그 학생의 가슴에 제대로 와 닿은 것 같았다. 남편의 조언에 그 학생은 세상을 향한 날카로운 감정을 조금 내려놓은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상황에서, 남편의 진심어린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되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그리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지만, 이제 다시 한 번 힘을 내어 살아 보겠다는 쪽지를 남편에게 남겼다. 

그 후로도 남편과 그 학생은 온라인상에서 계속 대화를 나눴다. 남편은 그 학생의 가슴에 조금이나마 온기를 전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온라인상에서 대화를 나누기를 세달 여, 남편의 진심이 통했는지 그 학생은 검정고시를 결심했고 자신의 꿈을 찾아서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했다. 

얼마 전에는 인터넷에서 벗어나 가족들과 함께 밖에서 직접 만나기도 했다. “장애를 얻은 후로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햄버거 가게에 가보고 싶다”는 학생의 말에 우리는 햄버거 가게에서 만남을 가졌다. 햄버거를 먹으며 대화를 나눈 후엔 함께 인근 공원으로 가서 산책까지 했다. 비록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가족의 도움을 받아야 했지만, 그 학생의 얼굴은 삶에 대한 긍정적인 에너지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남편은 자신의 진심어린 말 한마디와 작은 관심이 삶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학생의 인식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해 한다. 나 역시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아무리 삶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자신에게 애정과 관심을 가진 사람과 만나면 얼마든지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남편의 행동을 통해 깨달았다. 참사람을 정의하는 기준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참사람이란 타인에게 진심 어린 마음으로 다가가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는 멋진 사람을 가리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