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람 에세이 63번째 편지
이름 없는 꽃

글 : 박성근(참사람 독자)

 “...꽃 같은 제 아기를 잘 부탁드립니다. 언젠가 꼭 다시 찾으러 오겠습니다. 혹여 다시는 아기를 만날 수 없어도 평생 참회하며 살겠습니다. 가슴이 찢어지지만 미혼모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그러나 사랑하는 아기야, 너는 나를 용서하지 마라.."

  어느 눈발이 흩날리던 밤이었다. 아기가 구겨진 편지와 함께 버려졌다. 그리고 한 여인이 비틀거리며 돌아섰다. 어느 도시의 후미진 곳에 설치된 베이비박스였다. 희미하게 눈물을 훔치는 뒷모습만이 CCTV에 흔들릴 뿐이었다. 어느 어린 엄마와 아기의 마지막 이별 풍경이다.

  은퇴 전, 나는 공직에서 한 지자체의 복지국장으로 일했다. 그리고 관련 과장으로부터 베이비 박스에 관한 정책 보고를 받은 적이 있었다. 베이비 박스는 불법시설이므로 철거해야 한다는 우리 청의 단호한 입장과 한 생명이라도 보호해야 한다는 시설 간의 양가감정이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었다. 결국 그 아기들은 베이비 박스에서 여러 사회복지시설에 나뉘어 보내진다고도 했다. 법을 집행하는 나는 당연히 우리 청의 입장에 서 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퇴근 후, 직원들 모르게 홀로 베이비 박스가 설치된 곳을 찾아 서성인 적도 있었다. 엄마의 마지막 희망을 안고 버려진 아이들이 망막에 어른거렸다. 그렇게 내 내면은 법과 사람 사이에서 휘청거렸다.

  그리고 몇 년 전, 나는 어느 보육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베이비 박스에서 떠나온 아기들이 맡겨진 고아원이었다. 물론 무슨 큰 뜻이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그냥 그 곳에서 베이비 박스에서 흘러온 아기들과 가슴으로 마주하고 싶었다. 

  첫날, 원장님의 안내로 시설 전체를 둘러보았다. 나는 각 방에 배치된 생활지도사 선생님들에게서 신념과 봉사 정신을 어렵지 않게 읽어냈다. 눈빛 가득 아기들에 대한 사랑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각 방에서 마주친 작은 아기들의 눈빛은 왠지 퀭했다. 아기들은 일렬로 서서 가짜 젖꼭지를 빨고 있었다. 그리고 교사의 신호에 따라 일제히 내게 인사를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른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삶의 요령을 너무 일찍 터득한 것 같았다. 

  주홍글씨를 달고 정처 없이 떠돌았을 아기들 앞에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기들은 이름 없는 꽃이었다. 이름도 없이 피어나 원장님의 성을 따라 이름을 얻는다고 했다. 이름 모를 꽃들에겐 이름은 있지만 단지 우리가 모를 뿐이다. 그러나 이름 없는 꽃들은 처음부터 이름이 없어 더욱 아리다. 그런 아기들은 그나마 18살이 되면 원에서 나와 홀로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 아기들은 아무도 울지 않았다. 뒤돌아서 나만 몰래 울었다.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창밖을 올려다보았다. 멀리 한 무리 새 떼들이 디귿자로 날아가고 있었다. 문득 국가의 베이비 박스 철거 정책들이 무언가 잘못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도리질을 했다.

  그리고 어느 방에 들어서다 나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유독 가녀린 생활지도사가 혼자서 온 몸에 땀과 물로 범벅이 된 채 수많은 아기들을 목욕시키고 있었다. 그녀는 목욕이 끝나 울고 있는 아기들을 돌보랴 다른 아기들을 목욕시키랴 눈코 뜰 새가 없었다. 그런데도 참 따뜻하게 웃고 있었다. 가슴 깊이 우러나는 사랑이 전해졌다. 진실은 힘센 거짓으로도 덮을 수 없다. 

  원장님이 인사를 시키는데도 안쓰러운 마음에 더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른 시설을 보는 동안에도 온통 그 목욕실만 아른거렸다. 끝내 나는 조심스럽게 원장님께 여쭤보았다.

  “원장님, 아까 그 목욕시키는 생활지도사 선생님, 많이 약해 보이더군요. 그런데도 한없이 웃으며 그 많은 아기들 목욕시키는 모습이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아, 네...그 생활지도사 참으로 훌륭하죠. 얼마든지 다른 편한 시설에서 일할 수 있는데도 일부러 고된 일이 많은 우리 원에 취업했죠. 그것도 가장 어려운 베이비 박스 아기들의 목욕을 원했고요. 실은 그 지도사도 아기 때 어느 교회 앞에 버려졌어요. 그리고 우리 원에 와서 자랐는데 지금처럼 천사 같은 아기였죠. 그 당시 조금 늦게 발견되어 지금까지도 허약한 것이고요...”

  원장님은 그녀의 아픈 시간을 떠올리는지 말이 잠겼다. 콧날이 시큰했다. 한 사람으로도 세상은 빛나고 있었다. 그녀가 왜 그토록 큰 사랑으로 아기들을 씻겼는지 알 것만 같았다. 아기들을 목욕시키는 동안 오래전 그녀의 슬픔도 함께 눈물로 씻겨 냈으리라. 그 누구보다도 혼신을 다해 자신과 똑같은 삶을 그려가는 가여운 아기들에게 진솔한 사랑을 쏟아 부었으리라. 

  그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오랜만에 일기 형식의 글을 썼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내가 만난 다른 사람의 삶을 기록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다음날부터 나는 학생들의 수학을 가르쳤다. 그리고 틈만 나면 아기들이 목욕하는 방을 기웃거렸다. 어쩌다 입술이 부르튼 그녀와 눈이 마주치면 얼른 목례만 건넸다. 그러나 자식처럼 어린 그녀지만 마음으로는 존경과 연민을 보냈다.

  그리고 봉사가 끝나던 날, 마지막으로 그녀를 찾아갔다. 그녀는 여전히 땀과 물에 흠뻑 젖어 아기들을 목욕시키고 있었다. 아기들이 울고 보채는 와중에도 그녀는 마치 까치를 위해 남겨둔 몇 알 까치밥처럼 따뜻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덥석 잡고 나직하게 말했다.

  “진심으로 사랑이 무엇인지 알 것 같습니다. 저의 교만과 부끄러움을 알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꼭 행복하시고 건강하셔야 합니다...”
  어쩌면 뜻밖의 내 살가운 작별인사에 내심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처음에는 쭈뼛거리더니 이내 희미하게 웃었다. 웃음에서 몇 움큼의 감사와 슬픔이 섞여 나왔다. 

  세상에는 큰 업적과 이름으로 박수를 받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외진 곳에서 피어난 이름 없는 꽃들은 사람들에게 기억되지 않는다. 홀로 피었다 비바람을 맞으며 쓸쓸히 진다. 그렇게 그녀도 불러주는 이 없겠지만 내겐 따뜻한 영혼이다. 지금도 예순 넷 내 가슴에 머무는 또 다른 이름 없는 꽃이다. 내가 닿을 수는 없어도 오래도록 가슴에 베끼는 참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