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람 에세이 66번째 편지
나의 키다리 아저씨

글 : 김경대(참사람 독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아프리카 속담에 나오는 이 말은 한 아이가 온전하게 성장하도록 돌보고 가르치는 일에는 온 마을이 다 관여한다는 말이다. 마을을 휩싸고 있는 산에서 품어져 나오는 정기가 그러하고, 집 주변을 휘돌아 나오는 작은 개천도 아이의 정서적 교감에 도움을 준다. 하물며 자연이 그러할진대 사람들과의 연대는 더 소중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나는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는 교육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다. 이 직업을 가진지가 서른 해 정도 되었으니 인생의 반은 거의 아이들과 보내는 세월이었다. 나는 이 꿈을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미래의 큰 그림으로 그려왔다. 내가 만난 어떤 한 사람이 내 인생의 큰 영향력을 끼쳤기 때문이다. 그분은 내가 방향을 잃고 힘들어할 때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주신 분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 역시 누군가의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 주리라고 무수히 되뇌던 시간이 있었다. 지금에 이르러 나는 그 사람을 참사람이라고 부르고 싶다. 시간은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간다. 아버지는 시골 읍에서 자그마한 농기구를 수리하던 기술자였다. 그러다 보니 마을에 온갖 고장 난 물건들이 우리 집에 쌓여갔다. 가게가 딸린 단칸방에서 나는 기계들이 내는 금속성의 소리를 들으며 내 유년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작고 왜소한 분이셨는데 얼마나 말랐는지 등뼈가 훤히 드러나는 어린 내 눈에도 불쌍하게 보이는 등이었다. 아버지는 가난한 7형제의 맏이셨고 해가 떨어질 즈음 할머니는 우리 집에 돈을 받으러 오셨다. 마치 빚을 받으러 오는 빚쟁이 같았다. 아버지는 하루 종일 그렇게 고장 난 기계들을 만지면서 마음 편하게 식사도 제대로 못 하셨다.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위태로웠던 우리 집이 서서히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나는 대구에 있는 할머니 네 집에서 초등학교 6학년을 다니게 되었다. 수입도 끊기고 군식구가 하나 더 늘어난 할머니에게 나는 귀찮은 존재였을 것이다. 시골에서 상경한 나는 도시에 사는 아이들 틈에서 아무런 보호도 없이 내버려 졌다. 공부는커녕 그 나이에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암담한 현실이 눈앞에 가로막혀있었다. 그러다가 사춘기가 찾아왔다. 나는 늘 변방에 머물러 눈치만 보는 아이였고 사춘기 이후로 거의 말수도 줄었다. 중학교 올라가자 가정 사정은 더 나빠졌다. 교복조차도 제대로 살 수 없었고 도시락은커녕 밥을 굶는 시간이 많아졌다. 점심시간 때 하릴없이 학교 식수대에서 어슬렁거리던 나는 그날도 배가 고파 수돗가에서 물을 마시고 입을 닦는데 누군가와 눈이 딱 마주쳤다. 나는 물건을 훔친 아이처럼 얼굴이 발그레해졌고 처음 본 그 사람은 그냥 씩 웃는 것 같았다. 후에 그 낯선 분은 우리 반에 배정된 국어를 담당하는 교생선생님이었다. 이상하게 수돗가에서 그 교생선생님이랑 자주 마주쳤다.

어느 날 집에 오는데 선생님이 자꾸 내 뒤를 따라오는 것 같았다. 알고 보니 선생님의 집이 바로 우리 옆집이었다. 사춘기가 오면서 조용했던 내 성격도 삐딱선을 타기 시작했다. 이유 없이 화가 났고, 분노가 일었다. 나는 이 세상에 철저하게 버려진 아이였다. 가슴에 온통 원망으로 들끓었다. 더 이상 눈치만 보기 싫었다. 학교에 가면 어깨에 힘을 주고 소리도 크게 질렀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자신이 초라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아이들과 걸핏하면 싸움질했다. 몰려다니면 더 힘이 커지고 더 이상 불행한 것 같지 않았다. 단칸방에 숨어 살던 내가 싫어 나는 밖으로 활개를 치고 다녔다. 하지만 어김없이 집에 돌아오면 내 한 몸도 누울 수 없는 단칸방에서 겨우 숨만 쉬었다. 성적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교생선생님이 학교 가는데 불쑥 도시락을 내게 내밀었다. 나는 안 받는다고 한사코 도망 다녔지만 결국 그 선생님 등쌀에 염치없이 밥을 얻어먹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선생님은 참고서를 어디서 구해 와서 내게 주었다. 당연히 참고서는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선생님은 우리 반에 수업이 들어오면 언제나 시를 외우게 했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도 외우고 유치환, 박인환도 알게 되었다. 시는 나에게 전혀 다른 세상을 열어주는 판타지의 세계였다. 별 헤는 밤이 내 가슴속에 들어와 별똥별이 되어 툭 떨어졌다. 나는 아무 저항 없이 별을 가슴에 품었다. 해석은 어려웠지만 시를 읽을 때만큼은 나는 자유로웠다. 시를 읽고 있으면 배도 고프지 않았고 나 자신이 초라해지지도 않았다. 냉기가 가득한 가슴이 그때부터 말랑말랑해지기 시작했다. 시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상대를 불쌍하게 여기는 측은지심이 발동하기 시작한 건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태어나 처음 경험하는 감정이었다. 그날도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선생님이 쇼핑백을 하나 쑥 내밀었다. 

“이거 길에서 주웠는데 너 필요하면 가져.”

선생님은 도시락을 줄 때도 참고서를 줄 때도 언제나 길에서 주운 걸 가져왔다고 말씀하셨다.

열어보니 데미안, 톨스토이,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런 알지도 못하는 외국 작가의 책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시에 눈 뜬 이유로 이런 책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선생님은 나를 훈계하거나 가르치려고만 하지 않았다. 시를 통해, 고전을 통해 헤매는 나에게 방향을 제시했고, 닫혔던 내 마음을 지켜보면서 열게 해주셨다. 제멋대로 뻗어 간 가지를 쳐내서 햇빛을 향해 곧게 뻗어 나갈 수 있었던 옹이가 많았던 나무, 그 나무는 바로 나였다. 생각해보니 나는 운이 좋았다. 그때 그 정원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본다. 선생님이 참사람이라고 말한 것은 내가 교육현장에 있다 보면 이런 학생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아이들은 성장하기 위해 다양한 걸 경험하고 받아들인다. 인격이 갖추어지지 않은 아이들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길을 열어주는 멘토를 만난다는 건 참으로 힘든 일이다. 나는 그래서 그들의 멘토가 되기 위해서 학교에 일하게 되었고, 내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들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섰다. 그때 그 선생님처럼 훈계나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스스로 깨달으며 느끼도록 노력했다. 인간은 태어날 때 무기력하게 태어나지만 그 무기력한 만큼 발전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를 거쳐 간 수많은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선생님이었는가를 떠올려본다. 내가 중학교 시절 만났던 교생선생님이 내게 참사람이었듯이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되리라고 마음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