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람 36.5˚C

참사람 에세이 92번째 편지 

창문 너머 보이는 세상

글 : 오명원(참사람 독자)

나는 학년이 바뀌는 걸 싫어했다. 친구들은 나이를 먹고 자기의 학년이 높아진다며 좋아했지만 나는 싫었다. 또 나를 설명해야만 했다. 그래야 무상급식, 무상 우유를 받을 수 있었다.

학년이 바뀌고 2주 정도가 지나면 담임선생님들은 항상 나와 방과 후에 남아 상담했다. 그 이유는 내 등본에 있는 가족관계 때문이었다. 이혼한 부모의 학생. 매일 같은 옷만 입고 아빠의 어설픈 솜씨로 묶은 삐죽삐죽 튀어나와있는 머리.

이 모든 게 담임선생님의 시선을 사로잡았을 것 같다. 반 친구들은 항상 나를 피했다. 나에게서 냄새가 난다고 했다. 아무리 씻어도 반지하 냄새는 빠지지 않았다. 이제는 뼛속까지 그 냄새가 파고들은 모양이다.

내가 7살 때 우리 부모님은 이혼했다. 이혼이란 단어를 그때는 몰랐지만, 목이 말라 창문을 바라보며 물을 마시던 나는 엄마가 맨발로 도망치는 걸 보았다. 새벽이 채 깨지 않은 것처럼 조용한 날. 얼마나 급했으면 신발도 채 신지 못한 채 도망쳤을까. 적어도 신발은 신고 도망치지. 그날이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 뒤로 우리 집엔 빨간 나비들이 곳곳에 날아다녔고 덩치 큰 아저씨들이 아빠를 위협했다. 아빠는 언니와 나를 데리고 찬 밤을 거닐었다. 우린 정착하지 못한 채 늘 떠돌아다녔다. 그러다 겨우 반지하의 작은방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우리 집은 세 명이 누우면 꽉 찼고, 창문밖에는 사람들의 발이 지나다녔다.

중학생이 돼도 나는 내 집안 이야기를 해야 했다. 방과 후 아무도 없는 교실 선생님과 나는 단둘이 남아 이야기를 나눴다. 벌써 7년째 같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름 요령이 생겼다. 근데 참 이상했다. 이런 반응은 처음이었다. 선생님은 나의 눈을 안 마주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이야기가 끝난 후 선생님의 고개는 여전히 땅을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

긴 머리카락 틈 사이에 눈물이 떨어져 선생님의 분홍색 치마에 눈물이 번졌다. 당황한 나는 휴지를 뽑아 선생님의 손에 쥐여줬고 선생님은 연신 미안하다며 눈물을 닦았다. 선생님은 심호흡을 하며 진정하더니 마른침을 삼키고 입술을 열었다.

“태연하게 이야기하는 너의 모습에 선생님은 가슴이 너무 아팠어. 그 여린 잎에 얼마나 큰 바람들이 불어왔었는지 예측이 되질 않지만 잠깐 이야기해 준 그 몇 분 동안 참 고맙다고 생각했어. 쉽지 않은 이야기를 선생님에게 해준다는 것도 너무 고맙고 깊은 울타리 안에 선생님을 들여보내준 것만 같아 그것 또한 너무 고마워. ”

처음이었다. 나에게 이야기를 해줘서 고맙다고 한 사람은. 내가 이야기를 하면 선생님들의 대답은 제각각이었지만 늘 같은 반응이었다. 나를 위로해 주고 괜찮냐고 물어보고 그 뒤로는 나와 단둘이 이야기 하지 않았다. 하지만 속상하진 않았다. 그냥 난 무료급식만 받으면 되는 거였으니까.

그 이후 선생님은 나에게 말을 많이 걸었다. 성적, 숙제, 저녁 유무 등 주제는 다양했다. 선생님은 나에게 방과 후 교실에 남아서 공부를 하라고 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 아는 것도 없었고 그 쉬운 곱하기마저 버벅거리던 나였다.

선생님은 나의 수준에 맞춰서 항상 숙제를 내셨고 남아서 따로 과외를 해주었다. 가끔은 함께 저녁을 먹으며 나의 친구가 되었고, 내 이야기를 듣고 안아주며 때론 나의 엄마가 되었다.

중학교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을 올라가도 선생님과의 시간은 여전했다. 그러다 보니 한 번호로 찍던 내 답안지가 여러 갈래로 나뉘게 되었다. 선생님이 나에게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지금은 비록 성적이 맨 아래지만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어. 선생님이 늘 함께해 줄게.”

바닥에 덩그러니 누워 시멘트 바닥이 보이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어.

나는 지금도 여전히 선생님과 자주 연락한다. 나의 대학 합격 소식, 장학금 받은 소식을 듣고 그 누구보다 기뻐하신 선생님이다. 나는 아르바이트로 번 첫 월급으로 선생님께 새 신발을 선물했다. 요즘 누가 분홍색 운동화를 신냐고 툴툴거리던 선생님의 발에 신발을 신겨드렸다. 그날 저녁 창문에 분홍 신발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