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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참사람

참사람, 참스승

글 : 심수월(참사람 독자)

 

‘참사람 에세이’는 가족, 이웃, 친구, 스승, 우연히 스친 이름 모를 인연 등 지난 시절 내가 만났던 참사람의 따스한 기억을 길어 올리고, 여러분이 생각하는 참사람이란 어떤 사람인지 듣는 창구입니다. 매주 웹진 참사람을 통해 아름다운 사연을 소개합니다.

  

  

참사람 에세이 124번째 편지 

참사람, 참스승

 

: 심수월(참사람 독자)

 

 

 

사람은 모름지기 서울에 가야 성공을 한다.’ 농촌에서 태어나 농촌에서 눈을 감으신 할아버지는 제게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어렸던 저에게 그 한 마디가 왜 이리 마음에 남았던 걸까요. 시내에서 한참, 읍내에서 또 한참을 더 들어가야 나오는 시골에 살던 저는 그 말 되새기며 용감하게 서울행을 결심했습니다. 아직 중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아이가 어디 서울로 혼자 공부를 하러 가느냐며 부모님은 반대하셨습니다. 당연한 반응이었습니다.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품 안의 새끼를 홀로 서울에 보내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셨을 테니까요. 하지만 몇 날 며칠 단식투쟁까지 감행하는 저를 보며 결국 부모님은 두 손, 두 발을 드시고 서울행을 허락하셨습니다.

 

저는 운이 좋게도 서울에 위치한 한 상업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연고지라고는 고향에 사시다 결혼 후 서울로 터를 옮기신 고모님이 전부였습니다. 저는 고모님 댁과 가까운 곳에서 자취 하며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생활비로 학교를 다녔습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서울 생활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언제부턴가 가세가 기울어 부모님이 보내주시던 생활비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최소한의 지출만 해도 생활비 감당이 버거워질 무렵 저는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이웃집 아주머니의 부업을 도와드리고, 상회를 봐 드리며 돈을 벌었습니다. 성적은 날이 갈수록 떨어졌습니다. 입학 때까지만 하더라도 반에서 꽤나 촉망받던 학생이었던 저는 어느새 선생님의 걱정거리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고3이 되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1학년 때 제 담임이셨던 선생님이 복도를 지나던 저를 붙잡고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물으셨습니다. 왜 이리 살이 빠졌느냐는 진심 어린 걱정에 저는 집안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한참 동안 이어진 제 이야기를 고개를 끄덕거리며 들어주시던 선생님의 대답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습니다.

 

“1학년 학기 초 자기소개 시간에 네가 했던 말 기억나니?”

 

저는 잠시 눈을 깜빡거리다 선생님 물음에 대한 답을 기억해냈습니다. ‘나는 성공하고 싶어서 고향에서 올라와 이 학교에 진학했어.’ 처음 대면한 친구들과 어색한 분위기를 풀고자 농담 반, 진담 반 섞어 제가 했던 소개를 선생님은 기억하고 계셨던 겁니다. 스스로조차 잊고 있던 다짐을 기억하고 계신 선생님에 대한 감사함에 왈칵 눈물이 흘렀습니다. 선생님은 말없이 제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해주셨습니다. 기댈 곳 없이 메말라 있던 제게 선생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는 단비 같았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저를 또다시 선생님이 불러 세우셨습니다. 일은 그만두었느냐는 질문에 저는 쭈뼛거리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런 제게 선생님은 봉투 하나를 아이들이 보지 못하게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적은 돈이지만 선생님이 도와주고 싶어서 주는 거야.”

 

한사코 거부하던 제게 선생님은 기어이 돈을 쥐여주셨습니다. 선생님이 제게 바라는 건 오직 학교를 다니는 동안엔 일 대신 공부에만 전념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감사하다는 말만 열심히 반복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선생님의 관심과 도움 덕분에 다시 공부에 집중하며 무사히 고등학교 생활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계획했던 대로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취업을 하게 됐습니다. 운이 좋게도 꽤 괜찮은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됐고, 첫 월급을 받던 날 선생님을 찾아뵀습니다. 내복이 든 봉투 하나와 선생님이 이전에 제게 주셨던 액수의 돈이 들어있는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내복이 든 봉투만 건네받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힘들었던 너를 작게나마 선생님이 도와줬던 것처럼, 너도 누군가를 이 돈으로 도와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그 순간 , 제 마음속에 오래도록 박혀있던 할아버지의 말씀이 또 한 번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어쩌면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던 성공은 단순히 큰돈을 버는 것, 좋은 대학에 가는 것, 좋은 곳에 취직을 하는 것,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에 올라와 진심으로 존경할 수 있는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도,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를 알게 된 것도, 앞으로 남은 생은 작게나마 선생님의 말씀대로 나눔을 실천하며 살아야겠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도 성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제게 진정한 의미의 성공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 소소하게나마 나눔을 실천하며 살아온 지 벌써 3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리고 미성숙했던 제게 값진 깨달음을 주신 선생님이야말로 제겐 누구보다 귀한 참사람이자, 참스승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