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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청소년의 건강한 성장을 위한 지역사회의 역할 - 기찻길 옆 공부방의 코로나19 대처기

김중미(아동문학가)

 

 

1988년부터 문을 연 기찻길 옆 공부방은 인천의 오래 된 서민지역에 있다.

 

 

공부방을 처음 시작할 때 20대 초반이던 나와 남편은 어느새 50대 후반이 되었고,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공부방 교사를 시작한 후배들도 50대가 되었다. 공부방 교사로 모여 그곳에서 결혼을 하고, 공동체를 이룬 가족은 열 가족이다. 거기에 공부방을 졸업한 청년들까지 힘을 보태 지금까지 공부방을 해오고 있다. 33년 동안 우리 공부방은 문을 닫은 적이 없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열리는 초중고 공부방 말고도, 일주일에 한 번씩 동네 노인들을 위한 무료한방교실을 열었고, 주말에는 인형극, 노래패, 타악패 연습이 있었다.

 

봄이면 정기공연을 열고, 여름캠핑을 가고, 성탄잔치를 했다. 초등학교 때 공부방에 다니기 시작하면 고3 때까지 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대학진학이나 취업을 위한 준비도 함께 했다. 대학생이 되면 다양한 형태로 공부방을 위한 자원 활동을 이어갔다. 공부방에는 장애가 있거나 마음이 아픈 친구들도 있어, 지역의 상담센터나 장애인 공동체, 학교, 드림스타트 등과 네트워크를 만들어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지내왔다. 그런데 20202월부터 공부방은 30년 동안 겪어보지 못한 이상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지구촌 모든 이들이 그런 것처럼.

 

 

 

 

 

코로나194차 확산으로 올해 공부방 여름방학 계획도 작년처럼 다 무산 되었다. 캠핑은 물론이고 1학기 동안 중등부들이 만든 영화 세 편의 온라인 발표회도, 초등부가 만든 그림책 발표회도 모두 미뤄졌다. 7,8월이면 초중고등부가 전 학년이 모여 공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세웠던 계획도 다시 취소되었다. 초등부는 다시 긴급 돌봄으로 바꾸어 저학년 고학년으로 나눠서 오고, 중고등부는 일주일에 세 번만 학년 별로 시간을 나눠서 오기로 했다. 입시와 취업을 앞두고 공부를 해야 하는 고등부만 평소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여름방학이 되자 보호자들이 출근한 뒤 하루 종일 혼자 있어야 하는 아이들이 늘었다. 팬데믹 이전에는 방학 때면 초등부들은 한 나절씩 공부방에서 지냈다. 그런데 거리두기 단계가 높아지자 좁은 공부방에 스물두 명이 다 함께 있을 수는 없었다. 학년을 나누고 보호자가 전혀 없는 아이들은 따로 돌봄을 하기로 했다. 문제는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다가 저녁때나 공부방에 오는 중학생들이었다. 분명히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지낼 아이들을 방치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초등부가 있는 낮 시간에 중등부를 부를 수도 없었다. 중등부 담당교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이 궁리 저 궁리하다가 운동 앱을 활용해 아이들을 움직이게 하기로 했다.

 

아침마다 3천보씩 걷고 결과물을 단체 채팅방에 올리기로 했다. 물론 중등부 담당교사들도 함께. 원래는 혼자 걷고 결과물을 공유하기로 했는데 아이들은 각자 집에서 가까운 자유공원이나 화도진 공원에 모여서 걷기를 선택했다. 물론 최소 1미터를 유지하고 마스크까지 쓰고 말이다. 일주일에 두 번은 시간차를 두고 목공교실을 열었다. 연일 폭염이 이어졌지만 공부방 옥상에서 목공담당교사와 블루투스 스피커 만들고, 독서 대를 만들었다. 팬데믹으로 인한 고립을 어떻게든 막아 보려는 교사들의 노력에 아이들도 호응을 했다. 아이들 역시 홀로 여름방학을 보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8월 초, 저녁에 공부방에 모여 대입 자기소개서를 쓰던 고3들은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 코로나19만 아니면 우리 지금 솔뫼 농장에 가있을 텐데.”

괴산 옥수수 너무 먹고 싶다.”

작년에 우리 학년이 캠프파이어 프로그램 짰어야 하는데. 그걸 못했네.”

맞아. 그리고 올해는 아무 역할도 맡지 않고 동생들 노는 거 구경만 해도 되는 건데 너무 아깝다.”

너 기억 나? 재작년에 우리 노는 동안 고3 형들은 문제 풀던 거?”

기억 나. 나 그거 꼭 해보고 싶었는데. 3만 특별 대접 받는 거.”

정말 그립다.”

맞아. 동생들 진짜 보고 싶어. 공부방에서 동생들이랑 이렇게 떨어져 있는 거 진짜 처음이야. 애들 엄청 컸을 거 같아.”

 

그렇게 고등부는 동생들이 보고 싶다고 하고, 동생들은 형 누나들이랑 같이 공연 연습하고 캠핑 가서 같이 놀던 때를 그리워한다. 공부방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거나 대학에 다니는 청년들 역시 8월이 되자 솔뫼농장으로 가던 캠핑이 그립다고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지금 초등부 1,2학년 아이들은 언니오빠들이 말하는 캠핑이 뭔지, 공연이 어떻게 하는 것이고, 어린이날, 모내기, 함께 자기가 뭔지 모른다. 안타깝다.

 

공부방 아이들은 대개 한 동네에서 살면서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고, 같은 중학교를 졸업한다. 고등학교를 진학할 때가 되어야 남고 여고, 일반고 특성화고 등으로 갈라진다. 오래 된 서민지역에 살아서 환경이 비슷한데다 학교까지 같으니 아이들은 서로에 대해 잘 알고 공유하는 추억도 많다. 공부방아이들의 관계는 친형제자매만큼이나 가깝다.

 

공부방이 있는 동네의 미로 같은 골목은 이웃들을 이어주는 생명줄이다. 수직으로 된 아파트는 이웃을 만들기 힘들다. 아래 위로는 음식을 나누고 삶을 나누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골목으로 이어진 고만고만한 집들에 사는 사람들은 나눔이 일상이다. 아이들 역시 그곳에서 자라며 같이 놀고, 서로의 슬픔과 아픔을 나누며 살았다. 티격태격 싸우면서도 서로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되는 아이들을 보면 오래 된 동네가 성장에 얼마나 필요한 환경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때부터 생겨난 오래 된 주거지역인 우리 동네도 재개발계획이 확정되었다. 공부방이 있는 곳도 재개발 이야기가 멈추지 않고 있다. 동네가 사라지면 경제적으로 허약한 사람들의 삶이 흔들린다. 이웃끼리 서로를 돌보던 연결망도 무너진다. 우리는 요즘 이 연결망을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이다. 팬데믹을 겪는 동안 우리는 깨달았다. 우리가 얼마나 수많은 관계와 연결 속에서 살아 왔는지, 거리두기가 강화되면 강화될수록 거리가 아니라 만남과 협력이 더 절실한지를.

 

공부방 중등부 아이들과 작년 봄 영화를 만들었다. 방학 때마다 단편 영화를 만들어오긴 했지만 작년에는 다른 활동을 할 수 없어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갔던 것인데 그게 또 다른 배움의 장이 되었다. 영화의 무대는 곧 재개발이 시작 될 화수화평지구였다. 자신들이 사는 동네고, 공부방선생님들이 사는 곳이기도 했다. 그곳에는 엄마아빠들이 청년기 때 다니던 노동자들의 교회가 있고, 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 다니던 길이 남아 있고, 마을의 전설이 깃든 쌍우물이 있고, 작은 책방이 있고, 공부방 선배들이 하는 공방이 있다.

 

아이들은 그 곳을 배경으로 스마트폰과 팬데믹에 얽힌 자신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 그 중 한 작품은 청소년영화제에 초청을 받기도 했다. 올해는 영화 세편을 만들었다. 여전히 동네가 배경인 영화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동네 구석구석을 다니며 이야기를 모으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아이들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가정만이 아니라 더 넓은, 그러나 서로를 기억하고 소통할 수 있는 만큼의 관계가 필요하다.

 

팬데믹 기간이 길어지면서 우리는 조금씩 끊어졌던 네트워크를 복원한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와도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상담센터와도 긴밀하게 관계를 유지하고, 아이들의 보호자들과의 만남도 철저한 방역 하에 계속 이어간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묻는다. 도대체 돈 한 푼 받지 않는 공부방을 33년이 넘도록 이어가는 까닭이 무엇인지. 그때마다 우리는 대답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이들을 키우는 마을이라고 생각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