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품생품사 1화 '반구저신'편 소개
교보교육재단의 청소년 인성교육 콘텐츠 ‘품생품사’, 제1화는 학생과 교사의 갈등 속에서 발화된 예상치 못한 욕설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은 때때로 욕설을 대상과 목적과 방향성이 없는, 무의미한 하나의 감탄사로 활용하고는 합니다. 물론 그것이 옳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벌어졌을 경우 그 언어가 입고 있는 외피에 집중하기보다는, 잠깐 마음을 추스르고 상황에 대해 한 발자국 떨어져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덧붙여 순간적인 사고, 혹은 실수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서로가 감정을 앞세우기 보다는 ‘왜 그랬을까?’라고 한 번은 타인의 입장이 되어 고민해보는 배려, 드러나지 않은 이면의 감정을 고려할 줄 아는 도량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의미 없이 발화된 이 언어가 서로에게 얼마나 큰 당혹과 상처를 주는지 우리 청소년들이 한 번 더 생각해볼 기회를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번 화는 어른들의 반성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학교에서 또는 가정에서, 부모나 교사들이 자녀에게 ‘그래서는 안된다’고 훈육하며 정작 본인들은 같은 행동을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구저신(反求諸身)이라는 한자성어가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잘못되었을 때 남을 탓하지 않고 그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내고 고쳐나간다는 뜻입니다. 학생 지도 과정 중 어떤 교사들은 아이를 어엿한 인격체로 대하지 않고 그저 가르침이 필요한 미성숙한 대상으로만 취급합니다. 우리 청소년들이 인상을 쓰고 다닌다며 훈육하지만, 그 이야기를 하는 본인부터 먼저 인상을 쓰고 아이를 대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 아이들에게 예쁜 말 고운 말 쓰라면서 정작 운전대만 잡으면 욕설을 내뱉는 자신은 깨닫지 못합니다. 인성에 대한 지도를 하려면, 먼저 우리 모습부터 되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음향사고

그 애의 문자는 팔랑, 가볍게 날아왔다.

 

“미안. 우리 그만 만나."

 

준하가 보낸 여덟 개의 글자들은 ‘띠링’ 하고 쉽게 날아왔지만 막상 나에게는 결코 가벼운 무게가 아니었다. 휴대전화 액정을 뚫고 나의 눈을 타고 넘어 들어온 후 바로 가슴에 쾅쾅, 쾅쾅, 쾅쾅 아프게 박혔다. 머리를 말리다 말고 멍. 한쪽 귀가 새빨개지는 것도 모르고 드라이어를 들고 서 있었다. 그냥 아무 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가방에 쓸어 담고 교복 단추를 잠그다가 또 멍. 한참을 그대로 서서 휴대전화를 계속 들여다봤지만 뭐라고 답을 보내야 좋을 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어디냐? 학교 안 와?"

 

도운이의 문자를 받고서야 집을 나왔다. 늦었다. 쉬지 않고 자전거 페달을 밟았지만 이번 학기 처음으로 지각을 하고 말았다. 지각생들과 함께 운동장을 뛰는 동안 다른 생각은 나지 않고 계속 미.안.우.리.그.만.만.나.

 

....... 괴로웠다. 운동장에서 벌을 받고 있는 나를 그 애가 봤을까? 

 

1교시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에도 여전히 오작동 중인 내 뇌는 여전히 명령 수행 능력 무.

 

지리 선생님께서 들어오시는 걸 보고서야 가방을 열어 책을 찾았지만 어제 읽던 만화책만 가득했다. 고개를 떨궈 책상에 엎드렸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나는 어딘가에 집중하면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 외에는 전혀 감각하지 못하는 적이 꽤 있다. 우리 엄마는 그런 나를 이기적이라고 하시며 걱정하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기적이라서가 아니라 집중력이 뛰어나서일 뿐이라며 삐죽댔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집중력을 발휘하던 것도, 졸렸던 것도, 반항을 하려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지리 선생님께서 내 책상 앞에 오신 걸 까맣게 몰랐다. 슬픔에 취해 말썽을 일으킨 뇌가 전원이 꺼진 컴퓨터처럼 작동을 멈춘 것이었다.

 

친구들 말에 의하면, 선생님께서 책상에 있던 만화책을 발견하신 후 바로 휙 던지셨다고 한다. 물론 심각한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한다. 장난 반, 꾸짖음 반의 유쾌한 퍼포먼스 정도로 이해한 친구들은 곧이어 들려올 선생님의 농담까지 기대하며 흥미진진하게 바라봤다고 하니까.

 

그러나 불행히도 나는 그 때 제정신이 아니었다. 나의 뺨을 스쳐 빠져나간 만화책이 선생님의 손을 떠나 공중으로 휙 날아감과 동시에 용수철처럼 나는 튀어 올랐다.

 

“씨발!”

 

하지만 이 우발적 음향 사고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미 고장 난 로봇이 된 나는 몸을 돌려 달려가 교실 게시판에 주먹을 꽝! 부딪고 만 것이다. 손에서 흐르는 피를 보고서야 뇌가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재부팅 시작.

 

‘미쳤다, 도대체 내가 뭘 한 거지?’

 

내 입에서 튀어 나온 두 음절의 우리말, 혹은 아라비아 숫자 18.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1교시 수업이 시작되기 바로 직전까지도 우리의 입에서 노래처럼 흘러나오던 열여덟. 익숙한 사운드임에도 불구하고 반 친구들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일시에 숨을 죽였다. 모든 건 순식간이었다.

 

만화책이 짧은 비행을 마치고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먼저인지 주먹이 교실 게시판과 부딪히는 소리가 먼저인지조차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고들 했다. 유혈 사태를 동반한 대형 사고의 주범인 나는 부상을 당했다. 굳은 표정의 지리 선생님께서는 반장 도운이에게 나와 함께 보건실에 다녀오라고 하셨다. 찢어진 손등의 상처는 의외로 깊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가 저지른 일들을 생각하니 다친 손등의 통증보다 심한 두통이 두려움과 함께 몰려왔다.

 

보건 선생님이 소독을 해 주시고 지혈을 돕는 하얀 가루를 뿌려 주셨다. 붕대로 고정을 하는 시간이 조금만 더 천천히 흘러가길 바랐다. 교실로 돌아가면서도 난 다리를 질질 끌었다. 최대한 느리게 발을 옮겼다. 교실 안의 분위기는 여전히 어두웠다. 질식할 듯 답답한 시간이 더디게 흘러 드디어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렸다.

 

“허영우! 청소 시간에 교무실로 와.”

 

선생님께서 교실을 나서시자마자 긴장이 풀린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그 익숙한 사운드를 내뱉었다.

 

“아이, 씨...”

 

목소리를 낸 아이도 나도 목을 움츠리며 교실 문을 바라봤지만 선생님은 안 계셨다. 이번에는 음향 사고가 아니구나. 쾌활함을 되찾은 아이들이 내 주변으로 몰려 왔다.

 

"내가 너 아까 운동장 돌다 말고 멍 때리고 서 있을 때 알아봤다."

"지각해서 벌 받아, 샘 앞에서 욕하고 벽이랑 싸우다가 다쳐. 이 새끼, 이거 인생 막장이네."

"가는 날이 막장이라더니.."

"무식한 새끼, 가는 날이 장날이겠지."

"딱 징계 각이지, 뭐. 지리 샘 완전 표정 썩던데.“

"아, 영우 이 자식아. 뛰어 내려라, 뛰어 내려. 임마. 이 연쇄.. "

"연쇄 뭐?"

"음.. 연쇄.... 연쇄적으로 망하는 게 뭔지 몸소 확인시켜주는 이 숭고한 새끼."

"그거네."

“뭐?” “이 새끼 빙의된 거 아냐? 안 그러고는 평소에 안 하던 짓을 세트로 구사할 수가 없잖아.”

“어어 그래그래.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간다. 울 학교 옥상 귀신이 원래 반항아라잖아.”

“근데, 너 오늘 왜 그래?”

 

거칠지만 우리 나름대로의 위로법이라고나 할까, 신나게 놀려대는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묘하게도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그런데 지리 선생님께는 무슨 말부터 드려야 좋을지 몰랐다. 진짜 옥상 귀신한테라도 미리 물어 봐야 할까. 교무실 문 앞에서 망설이다가 지리 선생님과 마주쳤다. 선생님과 함께 등나무 스탠드 그늘로 갔다.

 

“뭐냐?”

“......”

“나도 황당해서 그래. 새 봄을 맞아서 오늘부터 삐딱선 타기로 한 거야?

“......”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리려고 했는데 막상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목이 꽉 잠겨서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후회하고 있는 거야, 억울하단 거야, 어떤 거야?”

 

“.......”

“무슨 생각인 거냐? 나라 잃은 백성 얼굴은 해 가지고... 꼭 실연당한 사람처럼 얼굴이 그게 뭐냐? 여자 친구한테 차이기라도 한 거야?”

“!!!!!!”

“임마, 여자한테 차인 것도 아니고...”

“차였어요.”

“어? 어... 어.”

“.......”

“.......”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막 떨어졌다. 이왕 터진 김에 부끄러움도 잊어버리고 그냥 엉엉 울었다. 체한 것 같이 답답하던 건 눈물을 억지로 참아서였나보다. 아니, 모르겠다. 역시 엄마 말씀대로 나는 지독하게 이기적인 사람인 게 맞구나. 징계를 받을 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빠져 준하는 잠시 잊었었다.

 

“음. 네 잘못 아니야. 더 울어도 돼.”

“.......”

“이별은 항상 난데없고 슬픈 거야. 슬픈 게 맞아. 에휴......그러니까 아까 그건 분노가 아니라 슬픔에서 시작한 대폭발이었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인정. 그건 네가 잘 크고 있다는 거야. 그래도 이 녀석아, 정신줄 놓지 마. 누가 봐도 나한테 욕한 걸로 들렸거든!!!“

“죄송해요.“

“나이가 들면 감정 표현을 좀 더 세련되게 할 수 있을 거야. 아파도 전혀 내색하지 않고 견디는 법을 터득하기도 해. 그렇지만 그것도 꼭 좋은 건 아니더라. 시간이 아픔을 해결해 줄 거라고 하지? 근데 그거 아니거든. 차라리 그냥 더 슬퍼해라. 이미 지금 넌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지금 충분히 슬 퍼하길 바란다. 이 슬픔이 너를 단단하게 만든다든지 그런 말도 믿지 마. 고통은 단련되지 않는 법 이거든. 그런데 네가 좀 더 좋은 어른이 되어갈수록 특히 매번 더 아플 거야. 익숙해지지 않고.”

“?????”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늘 준하에게 차인 나는 그럼 이제 영원히 슬퍼하게 된다는 뜻인가?

 

“내가 무슨 저주라도 내린 것 같냐? 이 녀석, 눈물이 쏙 들어갔네. 네가 비밀 얘기 해줘서 나도 내가 어렵게 깨달은 인생의 비밀 하나 꺼내준 거야, 임마. 은혜롭지?”

 

선생님께서는 조용히 웃으셨다.

 

오늘의 ‘음향 사고’는 이렇게 조용히 마무리 되었다. 방에서 선생님의 말씀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준하의 문자에 끝내 아무 답도 못한 게 떠올랐다. 문자를 보내려다가 나는 준하에게 편지를 썼다. 오늘 나는 억울하거나 화가 난 것도 아니고 그저 많이 슬펐다는 말을 준하에게 꼭 전해주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그 애에게 쓰는 첫 손편지다.

 

아, 뭐야, 진짜 계속 맘이 아픈 게 맞구나.

 

나는 아직도 선생님의 말씀을 모두 완벽하게 이해한 건 아니다. 하지만 나의 이별 편지를 아신다면 왠지 아까처럼 웃어주실 것 같다. 그래서 안심이 된다. 친구들이 놀릴 때처럼 묘하게 그렇다.

 

파란만장한 오늘의 일기 끝.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 구글+
  • - -
  • 참사람화이팅 19/03/25 [22:56]
  • 추천하기 0
  • 수정 삭제
김이도님의 필력 흡입력이 대단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