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소년원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

현지현(변호사, 법무부 소년보호위원, 구리남양주교육지원청 학교공동체 갈등조정자문단)

 

‘인간의 본성은 선할까? 악할까?’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그런 행동을 할 것으로 정해진 채 태어날까?’
‘삶의 어느 순간부터 나쁜 행동을 하게 되었다면, 그 행동은 일생동안 이어지게 될까?’

오랜 시간 마음속에 품어온 질문들이다. 변호사 일을 통해 내가 한 경험들은 이른바 ‘잘 살아온 어른’에 대한 관념을 부정적으로 바꾸어놓았다. 의뢰인으로 만나는 성인(成人) 당사자들은, 모두가 거짓말을 했다. 심지어 자신의 변호사인 나에게까지 말이다. 그 의도가 선한 경우도 있고, 악한 경우도 있다. 일부러 하는 거짓말도 있고, 자신조차 진실을 알지 못하게 된 채 하는 거짓말도 있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거짓말을 했다. 기억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변형되고 왜곡되었다. 이른바 ‘잘 살아왔다’고 보여 지는 성공한 어른일수록 더욱 그러했다. ‘아집’이란 것은 그렇게 형성되는 것임을 배웠다.

그렇게 매일매일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혼란스럽던 시절, 소년원 아이들을 만났다. 그런데 이 소년들은 달랐다. 하나같이 너무나도 솔직했다. 자신의 잘못에 관해 이야기할 때에도 무엇을 숨기거나 변명하려 하지 않았다. 인식하지 못해 저지른 일들이 있을지언정,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는 사실대로 말했다.

예를 들면, 어떤 보호소년은 자신에게 계속 스트레스를 주는 다른 보호소년을 때린 일로 우리를 만난다. 소년원 내 피해자-가해자 회복적대화모임이다(‘평화적 갈등해결을 지향하는 법조인들의 모임’ 소속 변호사들이 2015년부터 진행해오고 있다). 모임을 진행하는 우리는 사전 정보 없이 보호소년을 만난다. 가해자와의 단독 사전모임, 피해자와의 단독 사전모임을 통해 각자가 어떤 방식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파악한다. 다른 자료는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년이 거짓말을 한다고 해도 알기 어렵다. 그런데 5년간 만나본 100여 명의 보호소년 중에, 자신의 행동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대화모임 중에 행동의 배경을 알기 위해 보호소년의 사적인 영역에 대해 질문할 때가 있다. 불우한 가정환경, 과거의 범죄사실, 정신병력처럼 말하고 싶지 않은 내용도 많다. 그런데 이런 질문에도 보호소년들은 대부분 아주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특히 놀라운 것은,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아주 선선히 인정하고, ‘내가 그런 잘못을 저질렀으니 지금 여기서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성인 수형자에게서는 이런 인정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성인들은, 재판에서 완전히 결론이 난 뒤에도 좀처럼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 ‘교도소에 억울하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말처럼, 자신은 결백한데 시스템이 자신을 범죄자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검사와 판사를 원망하며, 피해자를 원망하기도 한다. ‘잘못은 인정하지만 이런 처벌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항변하는 경우도 많다.

이 차이는 무엇을 시사할까?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보호소년들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할 정도로 영악하지 못하다. 다른 이에게 책임을 돌리고 스스로는 괜찮은 사람으로 믿을 만큼 강력한 자아를 갖지도 못했다. 이 때문인지 보호소년들은 회복적 대화모임에서의 짧은 대화만으로도 많은 변화를 보였다. 소년의 내면에 있는 상처를 함께 바라보고, 그에서 비롯된 자신의 행동을 직시하고, 사건을 다른 시각으로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도 소년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가해자는 자신의 행동이 피해자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이해했다. 그리고 마음에서 우러나온 사과를 하였다. 똑같은 방식으로,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를 직접 가해자에게 말하고, 가해자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그 변화의 결실을 스스로 누렸다. 이런 과정을 통해 피해자는 자신감과 자존감을 회복하였고, 피해자와 공동체의 일상은 이전보다 훨씬 안전해졌다. 고슴도치처럼 움츠리고 세상을 향해 뾰족뾰족한 가시를 들이대던 소년들은, 마음을 열고 세상과 화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느 특별한 소년의 이야기가 아니다. 5년에 걸쳐 만난 100여 명의 소년들, 소년원 안에서도 가장 문제적이었던 소년들이 보여준 모습이다. 대부분의 소년은 성장에 필요한 보호와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 많은 소년들은 “소년원에 오기까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말한다. 우리가 그들의 인생에 관심을 보인 첫 대화자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토록 빠른 시간 안에 우리를 신뢰하였고, 우리와 대화하며 스스로 변화해야 할 이유를 찾았다. 그리고 실행했다. 소년들의 변화는 이렇게나 쉽고 가능한 일이었는데, 우리 사회는 소년들에게 그런 기회를 주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행세 좀 하신다는 잘 살아온 어른들이 아니라, ‘범죄자의 씨앗’ 취급을 받으며 가장 손가락질 받는 소년원 아이들을 보면서 비로소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나쁜 행동에는 원인이 되는 나쁜 상황이 있고, 그 상황이 개선되면 행동 역시 개선된다. 피해에 대한 공감능력을 키우면 가해를 하지 않게 된다. 사랑받고 배려받은 아이는 남을 배려할 수 있게 된다. 사람은 변하며, 교육은 효과가 있다.

‘소년법’은 이와 같은 전제 위에 생겨난 법이다. 일탈 행동이란 성장 과정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그런 행동을 한 소년을 범죄자로만 보고 제재하는 것은 소년의 인격 형성에 많은 폐해를 가져온다. 소년에 대한 처우는 교육적이고 인도적이어야 소년의 건전한 성장에 도움이 된다.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가 안전해진다. 가해행위가 밉더라도 가해자는 위해주어야 하는 이유다.

소년법의 이러한 시도는 전 세계적으로 19세기 말에야 시작되어 고작 100여 년 동안 시행되었을 뿐이다. 그마저도 대부분의 나라에서 범죄에 대한 엄벌화 여론, 예산상의 제약 등의 문제로 소년에게 제대로 된 보호와 교육을 제공하지 못하였다. 그런데도 ‘소년법’이 소년범죄 흉포화의 원인이므로 소년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실제로는 이슈화되는 잔혹 범죄는 청소년 범죄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그 수도 최근 10년간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이 대검찰청 ‘범죄분석’ 통계의 결과이다. 결국, 소년범죄가 흉포화 되고 있다는 주장조차 사실이 아닌 것이다.

누군가 나라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소년원을 보라고 말하고 싶다. 거기에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은 이미 스스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 미래에 사랑과 희망을 심을 것인지, 증오와 변명을 심을 것인지 이제 우리가 선택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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