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코로나 이후, 우리 교육은 어디로 가야 하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는 교육 패러다임의 전환

유영만 (지식생태학자, 한양대 교수)

 



코로나 19가 부른 사회 전반의 패러다임 전환은 교육 패러다임이 전환하는 과정에도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언택트 사회가 온다고 해도 교육은 근본적으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통해서 비로소 영향력을 주고받을 수 있는 과정이다. 온라인 접속과 오프라인 접촉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교육은 진정한 깨달음이 오고 가는 각성의 과정을 강조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우리 모두가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변화를 요구해도 교육의 근본과 존재 이유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많은 변화 속에서도 변함없이 강조해야 하는 교육철학과 목적이 무엇인지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다만 그것을 강조하는 방식의 변화, 전달하는 기술적 전략의 변화는 얼마든지 변화가 가능하다. 교육이 비대면 접속으로 이루어지든 대면적 접촉으로 이루어지든 뜻밖의 마주침을 통해서 새로운 깨우침을 얻는 과정을 도와주지 못한다면 교육적 만남은 무의미해진다. 교육은 영감을 주는 만남을 통해 깨닫는 기쁨을 제공해주는 의도적인 노력이다. 오프라인 접촉으로 만났던 교육이 어쩔 수 없는 사건으로 온라인 접속으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근본적인 교육적 원칙과 가치가 무엇인지를 성찰해보고, 그것이 온라인 접속의 태생적 한계로 가능하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떤 노력을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을지 지혜를 짜내야 한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면서 우리는 왜 이전과 다른 공부를 해야 되는가? 인간이 지능으로 축적한 지식을 인공지능이 순식간에 대체하기 때문에 지능을 능가하는 지성, 지식을 넘어서는 지혜로 무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식으로 지시하는 시대가 저물고 지혜로 지휘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인공지능이 쉽게 따라잡을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을 개발해야 되는 이유다. 이런 능력개발 과정을 촉진하는 근본적인 교육 패러다임의 전환이 동반되지 않고 단순히 교육무대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질 경우 교육은 우리를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메시지를 흡수하는 수동적 수신자로 전락하게 만들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비대면 접속으로 교육이 빈번하게 일어날 경우, 우리는 오프라인 교육을 무대만 바꿔서 온라인으로 옮겨서는 안된다. 차제에 전통적인 교육 패러다임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교육 패러다임으로 과감하게 전환하지 않으면 시대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기 어렵다.

오늘의 나를 깨우침으로 이끌어주면서 학은(學恩)을 베풀어 주신 스승에게 직간접적으로 깨우친 교육적 지혜를 교육 패러다임 전환에 적용해본다. 교육의 성패는 철학을 지닌 스승이 아이들을 각성과 성찰의 무대로 이끌어주느냐에 달려 있다. 그 길이 바로 진정한 스승의 길이며 배우는 사람의 도리를 찾는 길이다. 그 길은 목적지에 이르는 길이 하나뿐인 철도가 아니다. 철도는 출발선에서 가는 여정, 그리고 도착지가 사전에 철저하게 정해져 있다. 학습자의 개성보다 교육을 제공하는 공급자 입장에서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고안된 전통적인 교육 패러다임이다. 철도 패러다임보다 진일보한 패러다임의 도로 패러다임이다. 도로 패러다임은 목적지에 이르는 길이 여러 가지로 다양성이 부여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도달해야 될 목적지는 사전에 정해져 있다. 다만 거기에 이르는 방법은 얼마든지 다르게 만들어볼 가능성의 문을 열어 놓았다. 안타깝게 목표를 한 곳으로 규정한 도로 패러다임도 우리가 지향할 미래의 바람직한 교육 패러다임에는 상응하지 못한다. 내가 스승에게 배운 진정한 교육 패러다임은 언제든지 다른 대안적 가능성이 존재하며 무수한 우발적 마주침을 통해서 스스로 목적지를 찾아가는 오솔길 패러다임이다. 오솔길에는 정해진 길도 없고 목적지도 정해져 있지 않다.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곧 길이고 그 길속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모든 환경이 나에게 깨우침을 전해주는 스승이다. 나는 오솔길을 걸어가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열어가는 교육의 향방을 여섯 가지 패러다임으로 생각해보려고 한다.



패러다임 전환 ❶ 단점 보완에서 강점 강화로

전환교육은 단점을 보완하는 노력이 아니라 강점을 강화하는 노력이다. 단점을 보완해서 해당 분야의 강점을 갖고 있는 사람을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다. 남을 따라가다 영원히 따라잡지 못하고 불행한 삶을 산다. 내가 잘하는 재능과 강점을 중심으로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 공부는 내가 하면 즐겁고 재미있는 재능을 찾아서 어제와 다른 차이를 반복할 때 기쁨이 찾아온다. 기쁨이 선물로 다가오는 공부를 할 때 나는 공부를 멈추지 않고 평생을 반복할 수 있다. 기쁨은 단점을 보완하는 공부에서 만날 수 없다. 내가 하면 재미있는 능력, 재능을 찾아 공부할 때 기쁨은 용솟음친다. 재능을 찾으면 그 누구도 해낼 수 없는 예능을 능가하는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다. 강점을 중심으로 나다움을 드러낼 때, 그 때 드러나는 나다움이 바로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나만의 색다름이다.


패러다임 전환 ❷문제 해결에서 문제제기로 전환
공부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보다 전대미문의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보다 이제까지 누구도 던지지 않는 문제를 제기하고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리더가 될 수 있다. 문제제기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문제아라고 한다.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주어진 문제에 대한 대답을 빠르게 찾는다. 정답을 찾는 능력은 인간의 경쟁력이 더 이상 아니다. 인간은 질문하고 기계는 대답한다. 기계가 대답할 수 없는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능력에서 인간의 고유함을 찾는다. 정답은 과거로 향하는 관문이지만 질문은 미래로 향하는 관문이다. 호기심을 갖고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질문이야말로 전대미문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가는 창문이다. 누구도 던지지 않는 문제를 제기할 때 이전과 다른 현명한 답을 나서는 새로운 여정이 시작된다.


패러다임 전환 ❸방법 전달에서 방향 탐색으로 전환
미래는 불확실하다. 언제 어떤 변화를 몰고올지 전혀 예측이 불가능하다. 정해진 문제, 정해진 대답, 정해진 방법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교육은 방법을 가르쳐서 모범생을 육성하는 과정이 아니라 방향을 가리켜서 모험생을 육성하는 과정이다. 방법이라는 약을 먹은 아이는 스스로 방향을 찾아가지 못한다. 어떻게 하면 주어진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모범생은 생각지도 못한 딜레마 상황에 빠졌을 때 스스로 탈출할 능력이 없다.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누군가가 계속 가르쳐줬기 때문이다. 방법은 가르치는 것이고 방향은 가리키는 것이다. 남의 길을 따라가는 모범생보다 누구도 걸어가지 않은 길을 스스로 개척하는 모험생을 육성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패러다임 전환 ❹사전 계획 중심에서 우연 중시로 전환
공부는 사전 계획으로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구상하는 과정보다 우발적 마주침으로 깨달음을 터득하는 과정이다. 사전에 계획을 세우고 일정한 결과를 달성하는 교육도 필요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우연한 마주침으로 색다른 깨우침을 얻을 수 있도록 낯선 환경과 자주 부딪힐 수 있도록 교육적 여건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모든 생명체는 다 목적성을 띠고 있지 않다. 오로지 인간만 일정한 목적을 갖고 목표를 달성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하지만 자연의 많은 생명체는 존재 자체가 무목적적인 경우가 많다. 야생화가 꽃을 피우는 이유와 나무가 열매를 맺는 이유는 종족을 보전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다른 것을 희생하지 않는다. 무목적성을 띨 때 우연을 사랑한다. 사람은 우연히 낯선 환경과 마주칠 때 색다른 깨우침을 얻는 경우가 많다. 학습도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가운데 깨닫는 깨우침이 새로운 가르침을 선사한다.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 우발적 상황이 바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걸 맞는 일상적 삶의 풍경이다.


패러다임 전환 ❺지행일치에서 지행합일로 전환
공부는 지행일치(知行一致)를 추구하는 과정이 아니라 지행합일(知行合一)을 깨우치고 실천하는 과정이다. 먼저 알고 나중에 행동하는 지행일치의 교육은 앎과 삶이 철저하게 분리된다. 행동하기 전에 알아야 한다. 행동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는 교육이 행동 이전에 이루어진다. 그리고 배운 대로 나가서 행동한다. 이 때 알지만 행동하지 못하는 격차를 지행불일치라고 한다. 알면 행동할 수 있다는 가정을 갖고 있는 지행일치 패러다임은 전통적인 교육 패러다임의 치명적인 한계다. 반면에 지행합일은 알아서 행동하는 게 아니라 행동하면서 알게 되는 과정을 중시한다. 앎과 삶은 따로 놀지 않고 하나로 통합되는 지행합일의 교육이 되어야 교육이 삶과 따로 놀지 않는다. 지행합일은 《앎의 나무》의 저자인 칠레의 인지 생물학자, 마투라나에 따르면 앎은 그 자체가 효과적인 행위다. 모든 앎(knowing)은 함(doing)과 삶(living) 속에서 일어난다. 앎이 곧 함이고 삶이 될 때 지행합일은 삶을 변화시키는 혁신으로 작용한다.


패러다임 전환 ❻목표 달성에서 각성 사건으로 전환
공부는 성적 중심의 목표 달성 과정이 아니라 적성을 발견하는 각성 사건이다. 성적은 책상에서 올릴 수 있지만 적성은 일상에서 몸으로 체험을 통해 각성해야 알 수 있는 재능이다. 단기적으로 성적을 올려 목표를 달성하는 일도 필요하지만 더욱 소중한 일은 나의 적성을 발견, 내가 어떤 일을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를 각성하는 사건을 체험하는 것이다. 각성 사건은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나의 존재이유와 목적을 깨닫는 사건이다. 누군가 원하는 가치 기준에 따라 나를 잊어버리는 삶을 살다가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를 깨닫는 순간 큰 깨달음이 다가온다. 그 순간이 바로 각성 사건이다. 교육은 성적을 올리는 시험 준비 과정이 아니라 내가 왜 살아가야 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도록 각성 사건을 체험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각성 없는 교육은 학생을 관성대로 살아가게 만들고 타성에 물들게 유도할 뿐이다.


공부는 다리가 떨리는 일을 그만두고, 심장이 떨리는 일을 찾아가는 즐거운 육체노동이다. 머리로 계산하는 공부보다 몸으로 느끼는 공부가 오래 간다. 강점 강화, 문제 제기, 방향 탐색, 우연 중시, 지행합일, 각성 사건을 중시하는 공부는 모두 책상머리에서 머리로 찾아가는 공부가 아니라 몸을 움직여 직접 체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공부다. 이런 공부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결과 중심적인 위인지학(爲人之學)의 공부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하면 재미있고 신나는 과정 중심적인 위기지학(爲己之學)의 공부를 할 때 우리는 행복한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 위인지학은 나는 싫은 데 어쩔 수 없이 성적을 올리기 위한 노동으로서의 공부지만 위기지학은 내가 하면 기쁨을 주는 적성 중심의 놀이로서의 공부다. 이것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서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일 것이다.

※ 위 칼럼은 관련 분야 전문가의 의견으로 재단의 사업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