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람 인터뷰

마음을 열고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는 것이 참교육

박미경(연북중학교 특수학급 교사)

“공부 열심히 하고 올게요.”
덩치가 큰 남학생이 선생님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드르륵 교실 문을 열었다. 비장애 학생들과 통합교육을 받기 위해 다른 교실로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뜻밖의 말을 던진다.
“공부, ‘열심히’ 하지 말고 ‘보통’으로 하고 오세요.”
순간 남학생은 교실 문을 잡은 채 그대로 굳어버리고 만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모습이다. 골똘히 생각하던 남학생이 잠시 후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며 말한다.
“선생님. 농담하지 마세요.” 하고는 의연하게 교실 문을 나선다.


중학교 3학년인 두현이(가명)는 자폐성장애를 지닌 특수교육대상자다. 두현이는 특정 사물에 대한 집착, 고착화된 언어 패턴 등 자기만의 세계가 있고 이를 벗어나면 불안해한다. 고착화된 루틴(routine)을 깨기 위해 선생님은 많은 시도를 했다. 그리고 3학년이 된 지금, 두현이는 선생님의 의도를 농담으로 받아들일 만큼 사고의 유연성을 보여주고 있다.

박미경 선생님은 서울시 공립 중등 특수교사로서 현재 서울 연북중학교에서 두현이를 포함해 4명의 장애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선생님은 30년이 넘도록 오롯이 장애학생의 특성과 능력에 적합한 학습자료를 연구 개발하고 보급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또한 장애학생들의 창의성과 사회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지역사회와 다각적으로 협력해 왔다. 이러한 노력으로 교육부장관상 및 서울시교육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학생들과 수업 중인 박미경 선생님

 

Q: 선생님께서는 우리나라 통합교육의 1세대로 특수학급과 특수교사의 역할을 개척하신 선구자이신데요, 특수교사가 되신 계기가 무엇인가요?

우리나라에서 ‘특수교육진흥법’이 시행된 것은 1979년도입니다. 그 이전까지는 우리 사회에서 특수교육에 대해 관심이 거의 없었어요. 제가 특수교사로 발령받았을 때도 특수학급이 전혀 없었어요. 이제 막 특수학급을 보급하려던 시기였죠. 사실 저는 현장교사보다는 특수교육 분야의 교수나 연구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특수교육이 아직 미개척 분야이기 때문에 도전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거죠.   

그런 막연한 생각으로 특수교육과에 들어가서 수업의 일부로 현장실습과 자원봉사를 하게 되었어요. 그때 제가 봉사하던 장애인복지시설에 가려면 버스를 타고 한참 가야했어요. 버스정류장에 내리면 가장 먼저 락스 냄새가 섞인 특유의 냄새 나기 시작해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그 냄새를 맡으며 시설까지 걸어가서 아이들의 똥오줌을 닦아주고 밥 먹이고 그러다 보니까 한 달이 가고 육 개월이 지나고 일 년이 갔죠.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도 내가 만난 아이들은 똑같아 보였어요. 그때 ‘장애’와 ‘교육’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내가 과연 특수교육을 할 수 있을지 처음으로 고민하게 되었어요. 외국서적으로 접했던 특수교육의 화려한 겉모습과 현실에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었던 거예요.

그러다가 대학교 3학년 때였는데 약간의 장애가 있는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을 개인지도하게 되었어요. 제가 처음으로 가르친 학생이었죠. 하지만 6개월이 지나도록 아무런 진척도 변화도 찾을 수 없었어요. 회의가 들었죠. 결국 저는 내가 가르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 길을 포기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학생 어머니께 그만 두겠다고 말씀 드렸죠. 그런데 그 마지막 날 여학생이 달라졌어요. 변화가 일어난 거예요. 그 변화라는 것은 ‘학습’이 아니었어요. ‘방 치우기’라는 아주 작은 습관, 작은 실천이었어요. 저는 그 여학생에게 ‘공부하기 전에 방과 책상을 깨끗이 치워놓고 책을 펴놓자’라고 요구했어요. 하지만 6개월 동안 단 한 번도 지킨 적이 없었는데, 제가 그만두기로 한 마지막 날, 정말 거짓말처럼 스스로 방을 깨끗하게 치워놓고 책을 펴 놓고 있었던 거예요. 그 순간, 그 학생의 작은 변화를 통해 가르치는 희열을 느꼈고, 특수교육을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야겠다고 결심했고 특수교사로 임용시험을 보게 된 것입니다. 



Q: 특수교사로 발을 내디딘 이후 30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학생들을 만나셨을 텐데 그들과 어떤 시간들을 보내셨나요? 

그동안 만난 학생들 중에는 대소변을 치워줘야 할 정도의 중증장애 학생도 있었고 계속 소리를 질러서 도저히 수업을 할 수 없던 학생도 있었어요. 애착에 문제가 있었던 한 학생은 다른 친구들을 계속해서 껴안고 뽀뽀를 하려고 해서 힘들었던 경우도 있었죠.

언젠가 한번은 중증장애를 지닌 여학생이 교실에서 갑자기 옷을 내리고 소변을 보는 거예요. 너무나 당혹스러웠죠. 남녀합반인 교실에서 일어난 일이라 사춘기에 접어든 비장애 학생들에게는 너무나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또래 친구들로부터 부정적인 시선을 받게 될 장애학생도 걱정이 되었어요. 그래서 일반교사들과 저 그리고 학교 관리자가 모여 이 학생의 통합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특수학교로의 전학을 학부모님께 권유했어요.

특수학교는 장애를 가진 학생들만 모아 교육을 시키는 거고, 통합교육은 일반학교에 별도의 특수학급을 만들어서 장애 학생과 일반 학생이 함께 수업을 받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많은 부모님들은 자신의 아이가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서 통합교육을 받기를 원합니다. 소변을 본 여학생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어요. 그 어머니의 유일한 바람은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같이 교복을 입고 졸업하는 걸 보는 것이었어요. 어머니의 간곡한 바람을 뿌리칠 수 없었어요. 저는 그 여학생과 3년을 함께 보냈습니다.

그리고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 여학생은 통합교육의 긍정적인 가능성을 보여주었어요. 저와 학교도 노력했지만 학생 스스로도 자신의 문제행동을 고치려고 애썼어요. 그리고 실질적으로 상당한 변화가 있었지요. 학생이 졸업하고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그 학생을 근처 산에서 만났어요. 중학교시절, 현장체험을 할 때면 교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여기저기 뛰어다녀 항상 활동보조인이 지켜봐야 했는데, 이제는 보조인의 도움 없이 단기보호센터 장애인들과 함께 즐겁게 활동하고 있더군요. 예전과는 다르게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정말 뿌듯했습니다.



Q: 학생들마다 장애의 유형과 장애정도가 다를 텐데, 통합교육을 하려면 일반학급 선생님들과도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겠습니다.  
물론입니다. 특수학급 선생님들은 일반학급 선생님들과 항상 회의를 합니다. 어떤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함께 지도해 나가지요. 예를 들어 장애학생이 통합학급 수업시간에 문제행동을 하면 특수교사는 문제행동을 지도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경우, 장애학생이 문제행동 없이 수업에 잘 참여하면 일반교사가 ‘칭찬 스티커’를 활용하도록 프로그래밍을 합니다. 그렇게 받아온 스티커를 다 모으면 체험학습에 참여시킨다든지 여러 가지 기회와 보상을 주는 것입니다. 일반학급 선생님들과 소통하지 않고 서로 협조하지 않으면 실행할 수 없는 일들이죠. 

▲     칭찬스티커 활동


장애가 있는 학생들은 통합교육을 받으면서 특수교육을 별도로 받습니다. 그런데 꼭 장애등록을 해야만 특수교육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학급 학생들 가운데는 지적 장애 3급, 자폐성 장애 2급인 학생도 있지만 장애등록이 안된 정서 장애 학생도 있습니다. 지적, 시각, 청각, 자폐 장애뿐만 아니라 장애가 모호하거나 학습이 부진해도 특수교육을 받을 수 있어요. 최근에는 건강 장애라는 영역이 생겨서 장기적으로 치료를 받는 학생들에게도 특수교육의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Q: 특수교육과 통합교육을 병행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울 텐데 수업시간은 어떻게 결정하시나요?

통합교육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장애학생의 문제행동이에요. 사회성 부족으로 인해 일반학생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많이 일어나요. 그래서 통합교육이 어려운 것이죠. 하지만 그래도 통합교육을 고집하는 이유는 또래 친구들과 생활하면서 같은 문화를 공유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이 특수학급에 와서 공부하는 시간은 여러 상황을 고려하여 매우 치밀하게 정해집니다.

일반적으로 ‘개별화 교육지원팀’에서 결정하는데, 담임 선생님, 학부모, 교장선생님, 교부부장, 그리고 특수교사 등이 참여해 어떤 시간에 일반학급에서, 어떤 시간에 특수학급에서 공부하면 좋을지 사전조사하고 의견을 나눕니다. 그리고 학교 상황과 학부모의 요구, 학생의 요구를 수용해서 교과를 더 넣기도 하고 빼기도 하면서 수업시간표를 짭니다. 특수학급 친구들 사이에서도 개인의 수준 차이를 고려해 수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우리 반 친구들이 모두 4명인데 특수교육을 받는 시간, 교육내용이 모두 다르기도 하고 4명 모두가 함께 수업을 받는 시간도 있습니다. 서로 경쟁을 시키기도 해요. 구구단이나 곱셈 나눗셈 등의 경우 공통의 교재지만 다른 방식으로 가르치기도 하죠. 나름대로의 수준별 학습을 운영하고 있어요.


Q: 학습장애나 경도장애 학생을 위한 자기주도 학습 프로그램도 개발하시고 창의력을 끌어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몇 가지 실례를 부탁드립니다. 
장애 학생들은 누군가가 옆에서 도와주거나 지켜봐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혼자서’ 하라는 말을 굉장히 두려워합니다. 특수교육 기법 중 셀프 모니터링 이라는 것이 있어요. 거창한 교육법이 아니라 스스로 점검하고 공부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거예요. 한 번, 두 번, 세 번 스스로 체크하면서 공부하는 것을 가르쳐주면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장애 학생은 할 수 없다는 편견 때문에 시도하지 않거나 잠재된 가능성을 무시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비고츠키라는 교육자의 인지발달 이론에 따르면 아동의 발달은 과제를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실제적 발달수준과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해결할 수 있는 잠재적 발달수준이 있는데, 이 둘 사이의 간극을 줄여 현재 발달수준을 점차 늘려가야 한다고 합니다. 이를 근접발달영역이라고 하죠. 즉, 학생의 발달 가능성도 중요하지만, 학생이 발달할 수 있도록 돕는 주위의 도움도 학생의 능력이 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하는 것이지요. 저는 장애학생의 창의력은 이와 같이 주위의 도움을 통해 발현된다고 생각합니다.

한 예로, 저희 학급의 도예 시간이었는데, ‘자기만의 성’을 만드는 것이 주제였어요. 도예 기법 중에는 코일링이라는 기법이 있어요. 찰흙을 가래떡처럼 밀어서 둥글게 위로 말아 올린 다음,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도자기나 집을 만드는 거죠. 저희 반 다운증후군 학생은 손이 너무 두툼해서 흙가래를 제대로 밀지도 말아 올리지도 못하는 거예요. 그러니 앉아서 동글동글한 새알만 수십 개 만들어 놓고 있는 거죠. 자폐증 학생은 숫자를 너무 좋아해서 1, 2, 3, 4, 5 같은 숫자만 열심히 만들어 놓았고요. 미술 선생님이 흙을 밀어서 성을 만들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안 되는 거죠. 못하는 학생에게 하라고 얘기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어요. 그래서 저는 그 숫자들을 서로 붙여서 집을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 했어요. 그리고 또 새알을 쌓아서 집을 만들게끔 지도한 거예요. 그랬더니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너무나 아름답고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자기만의 성’이 완성된 겁니다. 일반 학생들은 자기들이 스스로 알아서 끝까지 뭔가를 만들 수 있지만, 장애 학생들은 옆에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성과 창의성을 끄집어 내주어야 해요. 잠재력을 끌어내서 끝까지 완성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특수교사의 몫입니다.

▲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도예 작품



Q: 장애 학생들이 스스로 학습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동기부여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자신이 만든 작품과 그림이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았을 때 학생들에게는 굉장히 큰 자극이 되고 동기부여가 됩니다. 무대에 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 저는 우리 학생들을 무대에 세우는 걸 꺼려했어요. 구경거리가 되거나 창피를 당하는 것이 싫었던 거죠. 그런데 자폐증 학생이 있었는데 시도 때도 없이 무대에 뛰어올라가요. 언젠가는 교장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데 마이크를 뺏어 욕설을 쏟아내는 거예요. 그때 저는 우리 학생들이 무대에 서보지 못했으니 무대 매너를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우리 학생들을 무대에 세워보는 게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무대에 올라가 욕을 했던 자폐 학생은 평소에 빈병을 잘 불었는데 엄마가 클라리넷을 가르쳐서 상당한 실력이 있었어요. 학교축제 때 그 학생을 무대에 세워서 클라리넷 연주를 했고 뜻밖에 많은 박수를 받았어요. 이후부터는 무대에 오르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고 신사적이 되었죠.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였어요. 무대에 올라 자신의 재능을 뽐내거나 많은 사람들의 박수 속에서 상을 받을 때 큰 보람을 느끼고 너무나 뿌듯해 합니다. 타인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저희 학생들이 또 다른 시도를 하게 되는 동기가 되고, 중요한 교육의 기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Q: 장애 학생들이 무대에 올라 발표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거부하지는 않나요?

예전에 몇 개 학교의 특수학급 학생들이 모여서 특수교육지원센터, 청소년수련원 등의 지원을 받아 숙명여대 음악치료대학원 학생들과 음악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차임벨을 흔들고 드럼, 팀파니 등을 두드리고 연주하는 것이었는데 많은 연습을 해서 무대에 올렸어요.
처음에는 지역 내 청소년 축제 마당에 참여했고, 이를 시작으로 자기들끼리의 무대를 만들기도 했죠. 부모님들을 모셔서 발표회를 열었는데, 자기들끼리 무슨 옷을 입을지 상의하면서 자긍심을 높이는 모습을 보았어요.

▲     무대에 올라 자신의 끼와 재능을 선보이는 학생들

 

일반 학생들 속에서 진행되는 발표회라면 우리 학생들은 일부분만 참여하게 되고 주도적일 수 없어요. 하지만 우리 학생들만 참여하는 발표회에서는 다들 적극적이에요. ‘줄 똑바로 서!’라고 소리치면서 앞에 나서는 친구들도 있어요. 서로가 끌어주고 밀어주면서 자신들의 무대를 만들어갑니다. 통합교육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사회성도 있지만, 특수학급 학생들만 모여서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경험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Q: 학교 안에서만 계신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 외부 기관과 협력하여 다양한 활동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활동을 해 오셨나요?

예전에는 지역사회와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수업시간에도 진행하곤 했어요. 2010년 이전에는 교과 운영에 융통성이 많았어요. 지역 복지관 선생님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프로그램을 개발했는데 일례로 복지관의 실버 프로그램과 연계한 적이 있었어요. 꽃꽂이 자격증이 있는 어르신들이 우리 반 학생들에게 꽃꽂이를 가르쳐주시고 꽃 이름도 가르쳐주시고, 학생들은 그 과정을 글로 써서 자기감정을 표현해 보는 수업이었어요. 

또 댄스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도 있었어요. 우리반 학생과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파트너가 되어 춤을 추는 거예요. 어르신들이 교실에 오셔서 댄스를 했는데, 우리 학생들도 그렇지만 어르신들이 엄청 좋아하셨어요. 열심히 연습해서 연말에 발표회도 열었죠. 당사자는 물론 주변 반응이 너무 좋았었죠.

2010년대로 넘어오면서 학교 시스템에 많은 변화가 생겼어요. 교육과정과 운영방식이 매우 엄격해졌고, 특히 2014년 세월호 사건 이후에는 ‘안전’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학교 밖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많은 제약이 생겼고, 학부모의 동의도 일일이 다 받아야 하고 절차도 복잡해지면서 외부 기관과의 연계 프로그램이 많이 축소되었습니다.



Q: 지금껏 함께 했던 모든 학생들이 하나하나 소중하고 기억에 남으시겠지만 그 중에도 특별히 기억되는 학생을 꼽는다면요?

너무 많죠. 마흔이 넘은 제자 중에 스승의날 전화를 해서는 ‘선생님, 돈까스 사주러 원주에 오세요. 사랑해요.’하고는 뚝 끊어요. 사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사주러 오라고요. 전화를 받고는 한참 웃었죠. 또 스무살이 넘은 제자는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해요. 다른 일을 하느라 전화를 못 받으면 남편이 대신 받기도 하는데, 남편과 제자가 둘이서 제 험담을 한참해요. 남편이 제자에게 이렇게 말해요. ‘너는 선생님이랑 함께 생활하면서 많이 힘들었지? 같이 사는 나도 힘들단다’하면서 웃어요. 또, 제빵사가 돼서 사회의 일원으로 한 몫을 훌륭히 해내고 있는 제자도 있어요. 교사 발령을 함께 받았던 동기들과 모임을 가질 때가 있어요. 다른 선생님들은 제자 중에 의사가 됐느니, 사장이 됐다거나 교수가 되었다면서 자랑을 늘어놓곤 해요. 그럴 때 제 머리에 떠오르는 학생이 몇 명 있어요. 모두 이 세상을 떠난 아이들이에요.

한 학생은 프레드 윌리 증후군을 가진 아이였어요. 식욕 억제가 되지 않아 비만 정도가 심각했어요. 키가 120cm였는데 몸무게가 110kg에 육박하여 몸의 가로와 세로 길이가 비슷해 보일 정도였으니까요. 그 학생을 데리고 병원에 가는데 걸음이 너무 느려서 ‘빨리 와!’라고 재촉하면서 가야했어요.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제게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이 아이가 한 걸음을 걷는 것은 선생님이 100미터 달리기를 할 때와 거의 맞먹는 심장박동’이라는 거예요. 그 말에 큰 충격을 받았죠. 병원에서는 위 절제 수술을 받아야 비만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는데 비용이 4천만 원 이상 드는 거예요. 집이 너무 가난해서 감당할 액수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학생의 아버님께 ‘TV는 사랑을 싣고’같은 프로그램에 나가서 치료비를 마련해 보자고 했지만 완강히 거부하셨죠. 결국 치료를 포기한 채 보내다 특수학교로 전학을 갔지요. 그리고 그 다음 해 기숙사에서 수면무호흡증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어요. 장애를 지닌 제자에게 아무런 힘이 되어 줄 수 없었던 ‘저 자신’을 보면서 교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교사의 역할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시작하게 된 첫 사건이었지요.

한 학생은 공격성이 너무 심해서 특수학급으로 왔어요. 미국에서도 살았는데 공격성이 심해서 격리되었던 적이 많았던 아이였죠. 아버님이 교수셨는데, 아들이 장애라는 것은 상상도 못하고 노력을 안 해서 공부를 못한다고만 생각 하셨대요. 그래서 더 엄하게 훈육을 하셨고 그것이 분노가 되고 공격적인 행동으로 표출되었어요.  중학교 1학년 때 전학을 왔는데 이 친구의 공격성이 소문이 나고, 특수학급에서도 책상을 엎거나 책을 찢고 친구를 때리는 등의 행동을 해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지요. 저는 그 아이에게 ‘미국에서 살다왔으니 네가 우리 반 영어선생님이 되어 친구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렴.’하고 부탁했어요. 학생의 영어실력은 그다지 뛰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가르치려 노력했어요. 그게 그 아이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고 그것이 공격성을 누그러트리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어요. 어머님이 너무 감사하다면서 졸업할 때는 우리 반 친구 모두를 집으로 초대해 파티를 열어주시기도 했죠. 하지만 고등학교에서 문제가 생겨 특수학교로 옮겼고 어느 날 갑자기 집에서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고 해요.   

그리고 대학생 때 첫 제자였던, 제가 현장에서 특수교사로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던 제자가 기억에 많이 남죠. 그 학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했어요. 제가 리포트로 써주고 미팅도 연습도 시켜주곤 했죠. 미대를 졸업하고 결혼해서 애기도 낳았는데, 자궁암에 걸렸어요. 치료가 잘 되지 않아 끝내 어린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하늘나라로 갔어요.



Q: 특수교사로서 선생님은 어떤 선생님이고 싶으신지, 또 어떤 선생님이어야 할까요?

 특수교사라고 하면 좀 ‘특수’하게 ‘이상’하게 보는 시선이 있어요. ‘장애’를 ‘장애’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는데 아직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아 안타까워요. 저는 저부터 그런 편견을 깰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특수교사는 특별하게 학생과 친밀하고, 특별한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 보여 지도록. 그래서 저는 학생들에게 장난을 많이 해요. 저는 장난꾸러기 선생님이고 싶어요. 웃긴 사람, 편한 사람,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는 사람, 쉽게 찾아오고 힘들 때 언제든 부를 수 있는 그런 선생님이었으면 좋겠어요. 교사로서의 저를 만들어주는 것은 9할이 우리 반 학생들이에요. 지금까지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왔고, 만나는 학생 한 명 한 명으로부터 배움을 얻었지요.

▲    박미경 선생님과 수업하는 학생


더 좋은 교사가 되고 싶은 욕심에 계속 공부를 하다 보니 박사학위도 받았고, 연구기관으로 이직할 기회도 있었어요. 고민이 되기는 했지만 결국 저는 학교 현장을 떠날 수 없었어요. 내가 떠나면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될지 걱정스러웠고, 장애학생이 없는 곳에서의 특수교육은 주인공이 없는 무대처럼 느껴졌어요.

저는 특수교사는 일반교사들보다 훨씬 전문적인 지식, 경험 등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반학교에 통합된 장애학생들의 교육이 효과적으로 실행되기 위해서는 일반교사, 학부모 때론 비장애 학생들에게도 상담과 자문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특수교사는 끊임없이 공부하며 다른 사람과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참사람이란 무엇인가요?

 참사람이란 단어는 풀어 얘기하면 진짜 사람이잖아요. 독불장군처럼 모든 일을 혼자 해내고, 타인과 함께 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능력이 많아도 ‘진짜’ 사람이 아니에요. 참사람은 혼자가 아니라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성 속에서 인정받게 됩니다. 어떤 한 사람이 업적이 뛰어나다고 해서 그 혼자만의 업적 때문에 위대한 사람이 되거나 존경받는 것이 아닙니다.
 존경받는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교육의 본질도 그런 것이에요. 교사가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은 교육이 아닙니다. 마음을 열고 학생들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고 교사의 생각을 주고받는 것이 참교육입니다. 소통할 줄 아는 사람, 타인과의 관계를 잘 맺을 줄 아는 사람이 제가 생각하는 참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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