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람 인터뷰

“은퇴 뒤 봉사, 스스로 행복 찾아 하는 거예요.”

이길숙(With PLUTE Ensemble 단장)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  ‘인생이모작’ 류의 말들이 고령사회를 관통하는 트렌드가 된 지 오래다. 때맞춰 퇴직 후 삶을 건강하게 살기 위한 개인활동과 제도적 확충이 이어지고 있다. 2016년 서울특별시교육청은 퇴직 교원을 위한 교육인생이모작지원센터를 발족했다. 비슷한 시기 창단된 연주단 ‘위드플루트앙상블(With PLUTE Ensemble)’은 센터의 대표 봉사팀으로 성장했다.

 

교장을 끝으로 42년 간의 교직생활을 마친 뒤 지금은 지역사회에서 왕성한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이길숙 단장을 만났다. 반나절 넘게 그와 나눈 교육과 삶, 사회에 대한 이야기는 곱씹어봐야 할 이슈들이 많았다.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언어, 차분한 음성을 타고 또박또박 전해지는 메시지는 마치 오케스트라처럼 다양한 변주와 잘 조응된 이야기들의 협연이었다.

 

▮교육도 삶도 아름다움(美)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

 

“운이 좋았어요. 퇴임 후 교육인생이모작지원센터가 생겼죠. 전부터 동료들과 플루트 연주를 해왔는데, 센터가 생기면서 함께 모여 활동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해주니 날개를 단 격이었어요. 평생 아이들을 가르쳤던 지라 봉사활동에는 최적화된 사람들이죠.”

‘with PLUTE Ensemble’은 더불어 함께 즐긴다는 의미다. 금천, 강서, 양천 지역 선생님들이 주로 모인 위드플루트앙상블 단원은 모두 12명. 예순 갓 넘은 은퇴자부터 일흔을 넘긴 단원들이 모여 현직 교사들과 아이들을 대상으로 무료 연주지도를 하고 있다.

“좋은 선생이 되고 싶어 합창, 기악지도 등 교내 음악활동을 도맡아 하면서 다양한 악기를 섭렵하게 되었죠. 피아노, 플루트, 바이올린, 가야금, 단소, 장구 등 평생 동안 배우고 가르치며 살았어요. 그 영향이 퇴직 후 봉사활동으로 자연스레 연결된 셈이죠.”

 

음악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가진 그에게 예술교육과 인성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인성교육은 궁극적으로 예술교육의 고리와 반드시 만나게 돼요. 흔히 말하는 인간의 덕성이나 인격은 음악교육에서 완성되죠. 요즘 학생이나 부모들은 학과 공부가 교육의 전부인 양 점수에만 매몰되어 있지만, 예술교육과 주지교육은 50:50의 비중으로 항상 같이 가야 해요.”

공부를 잘해 머리만 비대해진 사람은 정서가 메마르다. 물론 공부를 절대 무시할 수 없지만, 그에 더해 아름다움을 추구할 줄 알아야 한다. 일찍이 공자는 ‘시(詩)에서 감흥이 일어나고, 예(禮)에서 바로 서며, 악(樂)에서 완성된다(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하였다.

 

인간이 살면서 마땅히 추구해야 하는 가치는 아름다움이고, 미(美)를 추구하는 삶이 최고라는 지론을 힘주어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40여 년 경력의 간단치 않은 교육철학이 고스란히 배어났다.

 

▲   교사 연주단과 협연


 

▮교육은 끝없는 줄다리기, ‘행복’이 기준 되어야

 

담임 시절 늘 그 앞에만 오면 주눅들던 한 아이가 있었다. 최선을 다해 가르쳤지만 기대만큼 성취가 없었던 아이. 다음 해 새 담임과 운동장에서 떠나갈 듯 웃으며 연을 날리고 있는 모습을 우연히 보았다. 이전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저의 최선이 그 아이에게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던 거죠. 학교 오기가 얼마나 싫었을까? 아이에게 미안하고 죄를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참혹한 깨달음 이후로 아이들을 다그치는 것을 멈췄다. 마흔을 훨씬 넘겨 문득 찾아온 그 장면을 이 단장은 평생 잊지 못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교육과정보다 아이의 행복이 우선이라는 말을 그저 수사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행복은 유보될 수 없다’는 생각으로 180도 전환하고부터는 어떻게 해야 아이들이 행복할지 골몰했다. 마음을 고쳐먹으니 우선 아이들이 좋아했고, 학부모들의 신뢰가 뒤따랐다. 행복이 그렇게 밀려들었다.

 

“아이들에게 완벽함을 요구할 때는 서로 피곤했죠. 일기쓰기 지도할 때였어요. 매일 밑줄 긋고 토 달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어요.” 필요로 하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를 구분하는 혜안이 교육자에겐 필요하다. 문학이든 예술이든 타고난 감각이 있는 아이에게 필요한 약을 주고, 그렇지 않은 아이에게는 강요하지 않는 유연성이 절실하다.

 

교장이 되고부터는 본격적으로 예술교육에 발 벗고 나섰다. 첫 부임지가 서울의 한 낙후된 지역의 학교였는데, 분위기가 매우 침체되어 있었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자신감과 활기를 불어넣을까 고민한 끝에 선택한 것이 음악이었다. 아침동요부르기, 중창단 활동, 동요대회 출전과 입상을 통해 아이들이 박수 받게 만들었다. 그렇게 학교에 생기가 돌았다.

 

▮전문가는 끊임없는 자기개발을, 리더는 포용과 진심의 리더십 갖춰야

 

열린교육 도입 초기 호주의 한 초등학교로 다녀온 교육연수는 충격 그 자체였다. 수업 내내 아이들과 담임교사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1:1로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는 게 수업의 전부였다. 저렇게 해서 무슨 수업이 될까 의구심이 들어 수업안을 좀 보자 했더니, 깨알같이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지금이야 열린교육이 보편화되었지만, 그 때까지 우리나라는 획일교육 체제였다. 한국에 돌아와 바로 아이들을 모아 앉혔다. 선생님이 의자에 앉아 국어책을 읽으니, 아이들이 자연스레 모르는 것을 질문하기 시작했다. 공책이 필요 없었다. 빽빽이 받아 적어봤자 다시 들춰보지도 않는 공책은 사실 아무 소용없는 것이었다.

 

습관과 아이들 행동이 하나둘 바뀌면서 어느덧 교실 문화가 달라져 있었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죠. 쉬는 시간 맘 놓고 뒹굴던 놀이터가 시간이 되면 이야기하고 모둠끼리 자유롭게 활동하는 공간이 되었어요.”

수준별 활동 섹터를 만들어 아이들마다 맞춤형 교육을 하니 교사와 학생 모두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줄었다. “잘하는 아이들은 좋아하는 활동을 하도록 하고, 조금 뒤처지는 아이들은 제가 봐주었어요. 우리 교실 아이들은 하나하나가 자신에게 맞는 활동을 하고 있었어요. 그렇게 교실이 바뀌는 걸 보며 얼마나 뿌듯하고 벅찼는지 몰라요.”

 

초등 영어교육이 도입될 때는 좋은 교사가 되려고 테솔(TESOL) 자격증도 단박에 땄다. 끊임없이 배우고, 적용하고, 늘 실천이 앞섰던 그였지만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교육관을 가진 이상한 사람 취급당하기 일쑤였다. “교감, 교장이 된 뒤 제 노하우나 교육관을 후배 교사들에게 얘기해줄 수 있게 됐지만, 선생님들이 저를 어려워했죠. 교사들에게도 열린 마음으로 수준별 접근을 했어요. 한 발 한 발 진심으로 다가가니까 거부감을 가졌던 교사들도 돌아서고, 관계가 좋아졌어요.”

 

똑똑하고 유능한 리더는 자신의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한 뒤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할 수 없는 일은 무리해서 시도하지 않는다. 특히 리더가 늘 경계해야 하는 덕목은 자신의 헌신적 노력이 자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은퇴 후 학교 연주단 봉사활동

 

 

▮학교 진입장벽 낮춰야 큰 교육목표 이룰 수 있어

 

교육 문화를 바꾸기 위한 많은 정책들이 난무하지만 학교는 도리어 폐쇄적이고 황폐화되어가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 학교안전 문제 발생을 꺼리는 담당자가 있으면 외부인의 봉사활동 자체가 위축되는 꼴이다.

“교장직에 있을 때 수많은 방과 후 강사들이 학교에 드나들었는데, 제가 학교로 봉사활동을 나가면서 그 어려움을 알게 됐어요. 진작 알았다면 더 잘해줬을 것을, 그 때 제대로 지원해주지 못한 것이 미안했죠. 입장이 바뀌고 보니 학교라는 공공기관이 외부인에게 더 친절해야 한다는 것을 비로소 느껴요.”

 

솔직히 그만 두고 싶을 때가 많다. 동료 단원들도 이 푸대접과 고생을 언제까지 견딜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럼에도 아이들 연주 실력이 나날이 좋아지고, 또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무료로 지도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있다. 내년엔 하지 말자는 단원들을 다독이면서 말이다.

“봉사활동은 스스로 좋아서 하는 것이죠. 아이들 보고 가는 거예요.”

 

▮변화의 파고에 저항하지 않고 몸을 내맡기는 자세로 살아가기를

 

지식정보사회, 4차 산업혁명 등 미래를 전망하는 키워드들은 교육계에도 큰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오고 있다. 미디어의 확장에 따른 지적 패권주의의 붕괴, 극대화된 개인주의의 물줄기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가치관이 급변하는 시기에 가야할 길을 인도하는 몫은 어른이었다. 준비한 질문을 작정하고 던졌다. 삶을 앞서 살아낸 선배로서 사회에 해 줄 말은 무엇인가?

“앞으로 세상은 권위주의에 따라 일방적 존경을 강요하는 분위기는 사라지고, 완전 평등사회로 갈 겁니다. 혼돈을 지나 다시 안정에 이르기까지 개개인은 익숙해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죠. 격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규칙과 질서를 찾아가기를 바랄 뿐이죠.”

 

공동체, 숭고함, 품격 있는 삶 등 전통적으로 중요했던 가치는 개인의 행복 우선, 욕구 충족, 물질추구 등 새로운 가치체계로 전환되고 있다. 그 정향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미래세대가 행복해지는 사회로 질서잡히기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고 이 단장은 말했다. 또 묵묵히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해 임하는 리더십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  지역 초등학교 입학식 축하공연 봉사활동

 

이길숙 단장, 그는 여느 교장 은퇴자에게 기대되는 것과는 다른 특별한 아우라를 지녔다. 교육과 사람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확고한 신념, 자기실현 의지가 뚜렷했다. 인생 절반을 넘는 교직 생활 내내 넘치는 지적 욕구와 성취동기를 기쁘게 감당해냈고, 좋은 교사가 되려는 모든 일에 노력과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리더로서 늘 조심스럽고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태도를 지녔다. 그의 도움이 필요한 학생, 교사, 봉사단원 그 대상이 누구든 강요하기를 멈추고 기다린다. 기실 교육은 기다림의 미학이 지배하는 영역이다.

 

이 단장의 행복론처럼 사람을 가르치고 키우는 교육은 결국 행복을 찾는 일이다. 그 탄탄한 길목에서 비로소 참된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 구호만 있고 구체적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우리 교육. 도구나 자원, 이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아이를 대하는 교사, 부모의 태도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어른과 ‘참다운 삶’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며 발견한 가르침은 진심, 기다림, 겸손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