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교육재단 소식

책벌레 샘 마음 담긴 삼척의 비에 젖다
▲     책의 바다에 빠지다


양은영(압구정고 교사)

비가 촉촉이 내린다. 중학생 딸의 가방에 짐을 꾸려 메고, 딸의 샌들을 빌려 신고, 아들, 딸, 남편의 환송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평소 존경하던 권일한 샘과 함께하는 독서기행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올해 일한 샘은 교보교육대상 참사람 육성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교보교육재단이 사람을 제대로 알아본 것이다.

양재역 집결지에 갔다. 참석자들을 한껏 대우하는 듯 고급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놀랍게도 이 차편과 1박 2일 진행비가 모두 무료다. 참석자들 모두 일한 샘과 더불어 충분히 나누고 재충전하고 오라는 듯 세심한 배려가 느껴진다. 재단 관계자 분들의 친절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삼척으로 향한다.

첫 일정은 삼척 시내 식당에서 점심식사하기. 그곳에서 우리 모두의 연예인, 권일한 샘을 만났다. 다소 어색하고 수줍은 마음으로 인사를 건네고, 낯선 선생님들과 섞여 식사를 한다. 아직은 모두들 조금씩 조심스럽다.

식사 후 찾은 곳은 일한 샘이 근무하는 미로초교. 운동장 가득한 초록 잔디와 백일홍 꽃나무가 싱그럽다. 고운 비에 젖은 아담한 교정을 지나 일한 샘이 수업하는 교실, 복도, 도서관을 둘러본다. 어디든 당장 책을 꺼내 보고 싶어지는 공간들, 몇 날 며칠이고 책 읽고 글쓰기만 하고 싶은 욕구가 솟는다. 미로초 아이들은 참 좋겠다.

도서관에 자리 잡고 책놀이를 했다. 일한 샘의 진행으로 초등아이들처럼 즐겁게 논다. 서른, 마흔, 쉰, 예순... 다양한 연령대 선생님들이 나이를 초월해 깔깔깔 웃고, 서울, 광주, 이리, 동해... 각지에서 오신 선생님들이 지역을 초월해 가깝게 다가선다. 모두 좋은 분들 같다.

책을 통해 나를 소개했다. ‘알사탕’ 그림책을 읽을 때마다 울게 되는 나를. 그 ‘알사탕’이 있다면, 표현 못하는 자폐 장애아, 내 딸의 마음을 들을 수 있을 텐데... 울컥 밀려 온 감정에 말을 잊지 못한다. 일한 샘은 아이들 마음도 이렇게 열어주셨을 것이다. 이렇게 마음 놓고 책과 친해지게 하셨을 것이다.

 

▲     그림책 놀이


숙소로 이동해 저녁 식사 후, ‘빨강연필’을 주제로 독서토론을 했다. 책 속 인물 ‘민호’의 마음에 집중해 본다. ‘민호는 왜 비밀일기를 썼을까? 민호의 욕구는 무엇이었을까? 어떻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 민호 마음을 이해하려 할수록 일한 샘 마음도 같이 보인다.

꼭꼭 숨겨둔 아이들 마음 찾아내기 전문가 일한 샘. ‘어떻게 하면 아이들 내면을 내보이게 하고, 상처 난 마음 보듬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일한 샘은,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책읽기와 글쓰기의 방법으로 아이들 옆, 곁에서 함께 했을 것이다. 사랑하니까 꾸준했을 것이다. 과장되게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선생님 마음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속 깊은 사랑의 마음은 잔잔한 강물처럼 아이들에게로 흘러가 마음을 적셨을 것이다. 

어느 새 참석한 다른 선생님들도 상처 입은 자신을 ‘민호’처럼 용기 있게 내보이기 시작했다. 힘들게 꺼내놓는 이야기를 듣는 이들은, ‘천천히 말해도 돼.’라고 말해주었던 ‘수아’처럼 경청하고, 서투를지라도 ‘민호 엄마’가 ‘쿠키’를 굽듯 최선을 다해 자신의 위로를 건넨다. 오늘 처음 만난 관계이지만, 공감하고 지지하고 격려하는 공동체적 연대를 이룬다. 그렇게 밤이 깊고, 강제 소등해야 하는 새벽 1시가 되어서야 자리를 파했다. 아쉽다. 더 손잡아주고 더 안아주고 싶다.

▲     송강 정철 가사의 터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했다. 서울에 뭉쳐 두고 온 내 모습을 떠올린다. 입시 최전선의 도심지 학교, 조금만 실수해도 비난이 돌아오는 송곳 바늘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나. 수업과 평가와 업무에 노심초사 최선을 다하지만, 나와 만나는 아이들 마음 속 깊이 들어가기란 쉽지가 않다. 일상의 소소한 기쁨들에 자족하며 살아갈 뿐, 소진되도록 일해도 아이들과 깊게 교감하는 일이 갈수록 줄어드는 내 자리가 서럽다.

나도 한적한 강원도의 초등 교사였다면 다를 수 있었을까? 일한 샘이 부럽다. 일한 샘이 지켜 온, 살아온 그 자리, 내가 꿈꾸던 삶과 닮아 있지 아니한가. 가슴 속에 뜨거운 것이 일렁인다. 일한 샘처럼 살고 싶다. 일한 샘처럼 더 깊어지고 싶다. 환경을 바꿀 수 없으나, 내 자리에서 어떡하든 비슷하게나마 살아가고 싶다.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더 깊게 사랑할 수 있을까? 더 용기내고, 더 다가서고, 더 땀 흘리며... 해낼 수 있을까? 지금도 삶의 무게가 만만치 않은데... 주저한다. 그래도 그렇게 살지 않고는 마음의 공허를 채울 수 없음을 안다. 본을 보여준 일한 샘을 생각하고, 같은 길 가는 나의 지인들, 좋은 교사들을 생각한다. 다시 벅차오른다. 정년퇴임하는 그 날까지 이 마음 놓지 않으리라. 아무래도 삼척의 비에 마음이 흠뻑 젖은 것 같다.



교보교육재단은 매년 '교보교육대상 수상자 탐방'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2018 참사람육성 부문 수상자 권일한 선생님과 함께 '행복한 독서기행'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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