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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쥐타주, 프랑스의 못된 신고식 문화”

  프랑스의 그랑제꼴(Grandes écoles)은 ‘대학 위의 대학’이라 불린다. 고교 졸업생 가운데 상위 4% 내의 학생들만 들어갈 정도로 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그랑제꼴 학생들 사이에는 ‘비쥐타주(bizutage)’라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 선배들이 새내기들에게 오물이 섞인 ‘수프’를 먹이거나, 옷을 벗기고 심지어 때리기까지 하는 못된 풍습이다.

  이런 나쁜 문화는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았다. 비쥐타주는 무려 나폴레옹 3세 시절부터 이어져온 전통(?)이라 한다. 프랑스 정부가 비쥐타주를 내버려둘 리 없다. 법으로 금지하고 관련 학생들을 처벌해도 좀처럼 그랑제꼴의 신고식은 사라지지 않는다.

   비쥐타주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해마다 3월이면 선배들의 ‘군기잡기’가 우리네 신문에도 등장하곤 한다. 신고식이 통과의례처럼 된 학과나 동아리도 적지 않다. 신고식의 악습은 조선 시대에도 있었나 보다. 새로 관료가 된 사람들은 선배들의 괴롭힘을 참고 견뎌야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새내기는 비로소 ‘한 가족’으로 받아들여지곤 했다. 그러니 억울하고 고통스럽다 해도 이 모든 과정을 참고 견딜 수밖에 없겠다. 왜 이런 안 좋은 문화가 오래도록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

“진입장벽이 높을수록 단결이 잘 된다.”

   “아무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해병대의 모토인 이 말은 신고식의 의미를 잘 보여준다. 훈련 강도가 센 부대는 부대원들의 자부심도 높다. 힘든 과정을 거쳐 얻는 자리가 더 소중하게 여겨지는 까닭이다. 마찬가지로 진입장벽이 높은 집단일수록 단결이 잘 된다.

   부족 가운데는 성인식이 진입장벽 역할을 하는 곳도 많다. 어른 대접을 받기 위해 몸에 고통스러운 문신을 새기거나 모험을 해야 하는 식이다. 지금은 레포츠가 되어버린 번지점프도 원래는 비누아트의 성년의례였다고 한다.

   청소년 시기에는 또래 의식이 강하다. 아이들은 자기들 무리마다의 ‘의식(ritual)’을 만들곤 한다. 말도 안 되는 규칙을 만들어 서열을 만들고 괴롭힘을 일삼는 식이다. 그럼에도 고통당하는 아이들도 이를 어른들에게 알릴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랬다가는 ‘배신자’ 취급을 당하며 영영 아웃사이더로 지내게 되는 탓이다.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옳지 않다. 아무리 오래되었다 해도, 정신과 몸에 상처를 안기는 신고식 문화가 바람직할 리는 없다. 그렇다고 신고식을 없애야 옳을까? 시간과 장소를 넘어 반복해서 이루어지는 일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법이다.

   고통의 시간을 함께 넘긴 사람들을 떠올려 보라. 힘든 입시 공부를 같이 치른 학교 동창들, 군대 훈련소의 힘겨운 과정 동안 서로 의지했던 훈련병 친구들, 주눅 든 신입 사원 시절 연수를 함께 받은 입사 동기생 등등......

   진입장벽과 통과의례는 관계를 살갑게 만든다. 아무리 법으로 막고 처벌을 해도 신고식 문화가 좀체 사라지지 않는 까닭이다. 문명은 야만의 풍습을 문화적인 행사로 승화(昇華)시키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다면 신고식 문화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 방법은 없을까?

“수능이 대한민국의 성년식?”

   비쥐타주 과정에서 신입생들은 자기 혼자 괴로움을 겪지 않는다. 저 혼자만 살려하는 신참회원은 되레 눈 밖에 나기 십상이다. 새내기들은 자기보다 뒤떨어지고 더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잘 챙겨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선배들은 집단 전체에게 더 큰 모욕과 고통을 안길 지도 모른다. ‘동기사랑’은 신고식마다 등장하는 구호이다시피 하다. 이는 어느 나라의 신고식 문화에서나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신고식’은 어떨까?

   우리나라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성년식’의 의미가 강하다. 아이들은 시험과 평가라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으며 어른이 되어간다. 수능이 끝나면 아이는 비로소 오롯하게 스무 살 나이에 걸맞은 청년으로 대접 받는다.

  하지만 수능을 과연 ‘한국적인 성인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말하면 코웃음을 칠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겠다. 수능은 대한민국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겪는 과정이다. 그럼에도 ‘성인 사회로 가는 신고식’이 될 수는 없다. 왜 그럴까?

   우리의 수능은 또래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친구들을 밀쳐내고 달려가는 생존투쟁에 가깝다. 제대로 된 신고식 문화에서는 ‘우리는 하나’라는 감동이 뭉클하게 솟아올라야 한다. 우리의 입시에서는 승자가 된 극소수의 기쁨이 수많은 패자의 열패감에 가려지는 구도로 이루어질 뿐이다.

“시험은 배제가 아닌 배려의 수단이어야 한다.”

   이 점은 우리 학교 문화에서도 다르지 않다. 한 예로 교육부가 중‧고교에서 실시하는 학업 성취도 평가를 둘러싸고 말들이 많다. 교육계 일부에서는 이를 ‘일제시험’이라고 낮추어 부르며 당장 없애라고 목청을 높인다. 학생과 학교를 한 줄로 세워 경쟁을 부추기는 나쁜 제도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시험이 사라지면 과연 학생들이 행복해지고 학교가 바람직하게 바뀔까? 성취감이 없는 생활은 경쟁이 치열한 환경만큼이나 고통스럽다. 하루하루 성장하고 있음을 확인할 의식과 절차가 없을 때 학교는 되레 퍽퍽해질 수 있다. 인간관계도 모래알처럼 흩어질 테다.

   그렇다면 시험의 의미를 배제할 아이가 아닌 배려가 필요한 친구를 찾는 과업으로 바꾸면 어떨까? 지금의 시험은 뒤떨어지는 이들을 배제하는 도구로 쓰인다. 학교 성적이 나쁘면 기준치에 못 미친 아이들이 눈총을 받지 않던가. 그러나 뒤떨어진 아이들을 위해 학교 공동체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시험의 평가기준으로 삼으면 우리네 학교 문화, 나아가 교육도 크게 바뀔 것이다.

   모두가 성장해야 나도 성공한다는 믿음이 자리 잡은 곳에서는 진입장벽이 성장통(痛)으로 여겨질 뿐이다. 반면, 남을 눌러야만 내가 살아남는다는 생각이 뿌리 깊은 곳에서는 격식을 갖춘 통과 의례도 폭력으로 다가온다. 우리네 학교 문화는 어떻게 어느 쪽에 가까울까? 답이 너무 뻔해 마음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