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람 36.5˚C

지난겨울,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아동학대 사건을 보며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몸서리쳤을 것입니다. 어김없이 아동문제 전문가들의 ‘말씀’이 반복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많은 부모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일그러진 부모들의 욕심을 탓하면서도 ‘적어도 나는 저런 괴물은 아니야.’라며 자조와 위안을 삼았을 것입니다.

교육에 대한 욕망, 내 안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안타깝게도 이제 지난겨울의 일은 그렇게 잊힌 듯합니다. 우리 안에도 있는 괴물과 그로 인해 아픈 우리 아이들을 들여다보지 않고, 먼 나라 괴물들의 이야기로 밀쳐둔 모양입니다. ‘저런 아이들에 비하면 넌 그래도 행복한 거야.’ 무심히 던지는 부모의 말이 아이에게 상처가 된다는 것을,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런 사회적 문제를 특별한 개인의 병리적 문제로 치부하고 나로부터 분리해서는 안됩니다. 욕심에 눈이 멀어 아이를 닦달하는 내 안의 괴물을 보지 못하고, 전문가들의 그럴싸한 말에 고개만 끄덕거려서는 이 사회가 변하지 않습니다. 당장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아픈 성찰과 그에 따른 실천이 없으면, 아프고 죽는 아이들은 언제 어디서든 나올 수 있습니다.

평범하다고 위안삼고 있는 우리 주변에도 아픈 아이들이 참 많습니다. 성적 경쟁에 내몰려 학원을 전전하지만, 또 공부할 것이 생기는 현실에 지치고, 열심히 해도 믿어주지 않는 부모 때문에 아파합니다. 놀면 뒤처진다고 겁주고, 미덥지 못한 시선을 보내는 어른들 때문에 주눅 들고 자꾸만 엇나가게 됩니다.

우리 집 아이이고, 이웃 아이이기도 한 이들의 아픔과 상처가 과연 작은 것일까요? 언론에 나올 정도의 학대는 아니니 참으라고 해야 할까요? 어른들 말만 잘 따르고 참고 기다리면 성공할 수 있다는 뻔한 거짓말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걸까요?

명문대가 아니라 ‘사랑’을 위한 새로운 교육 담론이 필요한 때

모두들 ‘명문대 진학’과 ‘안정적 일자리 획득’이라는 명분으로 자식교육에 올인하고 있습니다. 아이들 얼굴 한 번 들여다보지 못하고, 경쟁에 뒤처질까 하는 불안에 잠을 이루지 못하지만, 아이가 명문대만 진학하면, 하다못해 인서울 대학만 들어가면 모든 것이 보상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신념이 더 이상 보장되지 않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여러 경고에도 짐짓 헛된 희망을 만들고 끝까지 부여잡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새로운 교육 담론이 절실합니다. 막연한 불안감 속에 갇힌 부모 그리고 공부하는 기계가 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아니라, 내 아이의 행복과 부모의 성장을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교육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명문대 진학이 성공이 아니라 ‘자기 삶의 주인으로 서는 것’이 성공이라고 부모는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매일을 긴장 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기쁘고 즐거운 일을 스스로 찾아 하는 아이’에게 박수를 쳐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학습능력의 성장만큼이나 ‘영혼의 성장’을 위해 애쓰는 아이를 진심으로 안아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인서울’이 아니라 영혼에 온전히 접속하는 ‘인소울’을 위한 교육에 가치를 부여하는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듯 남들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면 단 하루, 단 한 시간 만에 모든 게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입니다. 이 말을 우리 교육상황에 빗대어 조금 치환하면 문제점을 바로잡을 실마리가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면 단 하루, 단 한 시간 만에 우리 아이들의 행복이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누구나 사랑을 말하고,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습니다. 시대의 욕망에 충실한 부모가 아이에게 1등을 요구하는 것도 어쩌면 그들에겐 최선의 사랑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의 행복한 얼굴을 당장 볼 수 없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욕심일 뿐임을 아프지만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랑은 미래를 위한 유보가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과 표현

날마다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사랑의 기예가 아니면 아이들은 행복한 얼굴을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당장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사랑을 원합니다. 아이의 몸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부모의 몸을 느껴야 비로소 사랑받고 있구나, 안도합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일은 가장 일상적으로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모의 손길에서 눈빛에서 말투와 행동에서 꽃처럼 피어나야 합니다. 매일 매순간의 시간 속에서 표현할 수 있는 사랑의 비법은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저녁에 아이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면 ‘오늘 하루도 애 많이 썼겠구나!’ 하며 아이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 보세요. ‘숙제는 했느냐?’ ‘학원은 다녀왔느냐?’ ‘집안은 왜 이런 꼴이냐?’ 새어 나오는 잔소리는 잠시 눌러 두고 대신 아이를 온몸으로 안아주며, ‘하루 종일 네가 보고 싶었다.’는 말을 정성껏 건네줘 보세요.

아이를 온몸으로 안는다는 것은 존재 자체를 예찬하는 일입니다. 어떤 조건도 필요 없이 네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메시지를 주는 일입니다. 부모가 따뜻하게 안아주는 장면은 아이의 마음속에 깊이 박히게 됩니다. 두고두고 사랑의 장면으로 복기되어 아이가 평생을 살아가는 데 든든한 힘이 되어 줄 것입니다.

아이를 위해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아이와 다정하게 먹는 것도 큰 사랑을 느끼게 해줍니다. 아이들은 자신을 위해 애쓰는 부모의 모습을 눈에 담고 마음에도 담습니다. 부모의 음식은 삶의 위로가 필요한 순간, 큰 위력을 발휘합니다. ‘부모가 나를 사랑한다.’는 정서를 갖고 있느냐의 여부가 한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결정합니다.

아이가 건네는 말은 부모에게 다가오는 중요한 신호입니다. 반드시 정성을 다해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합니다. 아이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아이와 함께 잠을 자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오랜만에 너와 누우니 행복하다.’는 달콤한 말을 귓가에 대고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입니다. ‘아이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말할 때, 그 행복의 구체적인 실체가 바로 그 순간 당신이 보고 있는 아이의 얼굴임을 기억하세요.

사랑받는 아이는 어디서든 빛나

아이와 함께 보내는 일상적인 감탄의 시간들은 지금 맞이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단언컨대, 지금 이 순간의 사랑을 유보한 채 아이를 경쟁에서 승리자로 만드는 그 어떠한 노력들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아이에게 사랑은 삶을 유지하는 힘이자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사랑을 충분히 받은 사람이 남들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교육하여 궁극적으로 달성케 하려는 것이 무엇인가요? 명문대를 가고, 좋은 직장을 얻어 혼자 잘 살거나, 내 가족만 잘사는 것이 인생의 종착지는 아닐 것입니다.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어려운 사람은 도우면서 살고, 남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이 낫지 않을까요? 흡족하게 사랑받은 아이라야 사회의 무수한 타자와 따뜻하게 연결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에게 곁을 내주는 여유를 갖게 되고, 자기가 받은 사랑을 돌려주는 기쁨을 만끽하게 됩니다.

사랑만으로 교육 문제를 전부 해결할 수 없지만, 사랑 없이는 그 어떤 시작도 할 수 없습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구체적 실천의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서 교육현실을 논하는 말은 그저 공허한 말놀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누구도 연습된 부모는 없으며, 그저 아이와 함께 성장해 나갈 뿐임을 인식해야

자식을 제대로 사랑하는 것은 부모의 몸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욕심과 불안을 아프게 떼어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사회의 경쟁구조 안에서 자식교육의 목표를 정신 차리고 성찰하지 않으면 부모는 언제라도 아이를 아프게 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완벽한 부모로서 선(先)경험이 없습니다. 그저 우리들은 매일 새로운 부모의 삶에 직면해 있을 뿐입니다. 그것이 부모는 자식을 키우는 존재가 아니요, 아이와 함께 성장해 나가는 존재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서툴고 부족하더라도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것에 의미를 둔다면 우리는 언제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데 늦은 때란 없습니다. 아이들이 조금 어렸을 땐 우리도 서툰 부모였습니다. 아이를 깊게 사랑하고자 했으나,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 불안했습니다. 아이의 등짝을 때렸던 기억이 아프게 떠오른다면, 공부하라 닦달했던 어제의 모습이 부끄러워진다면 늦지 않았습니다.

곁에 있는 아이를 온몸으로 안아주는 것부터 하면 됩니다. 욕심을 내려놓고, 불안을 눌러두고, 아이를 선한 눈으로 바라보세요.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사랑을 지금 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눈짓과 손짓, 몸짓으로 표현하세요. 복잡하게 얽혀있는 교육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출발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이 칼럼은 관련 분야 전문가의 의견으로 재단의 사업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