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교육재단 소식지「참사람 36.5˚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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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참사람

넘생찬빛

교보교육재단

‘참사람 에세이’은 가족, 이웃, 친구, 스승, 우연히 스친 이름 모를 인연 등 지난 시절 내가 만났던 참사람의 따스한 기억을 길어 올리고, 여러분이 생각하는 참사람이란 어떤 사람인지 듣는 창구입니다. 매주 웹진 참사람을 통해 아름다운 사연을 소개합니다.

  

 

참사람 에세이 83번째 편지 : 넘생찬빛

참사람 독자 변윤미 글 

 

  

작년, 엄마가 갑작스런 수술로 입원하신다고 했을 때, 연고도 없는 부산의 한 병원에 보호자로 그렇게 오래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었는데... 복잡 하거나 어려운 수술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수술 후 의식을 잃어 혼수상태에 빠졌고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처음엔 딸인 나도 못 알아보며 신체적, 정신적 모든 신호가 안 좋게 나와서 얼마나 많이 놀랐던지! 몇 날 며칠을 눈물과 심란함 속에 있다가 집중치료실로 와서야 그나마 한숨을 돌렸다. 혈압과 체온 체크, 주사 및 피검사, 회진 등으로 제대로 잠을 못 자는 게 되려 감사히 여겨질 정도였다. 맞은편 침대에는 거동이 어려운 어르신 환자가 있었는데, 정신없는 와중에도 옆에서 간병 하시는 분의 모습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분은 항상 존댓말로 환자를 대하셨고, 고성이나 짜증을 내지 않으셨다. 의식이 온전치 않은 환자한테 함부로 하는 몇몇 간병인들과 자연스레 비교되었다. 또한 식사 때나 청소, 용변 처리 등에 이르기까지 그분의 일처리는 흠잡을 게 없을 만큼 깔끔했다. 원래 꼼꼼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간병을 의뢰한 환자 가족이 올 때만 열심히 하는 사람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누가 보든 말든, 인정해 주는 이가 있든 없든 해야 할 일을, 아니 그 이상을 바지런히 하시는 분이었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흔쾌히..!! 같은 병실에 있으면서 그분의 크고 작은 도움을 다 받았으니, 모두가 넘치는 배려의 수혜자였던 셈이다. 자기가 맡은 환자에게 최선을 다해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돌아볼 줄 아는 넉넉함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건 아침마다 깨끗한 새 옷으로 갈아입고 곱게 화장하시는 모습이었다. 병원 생활을 오래 하면 환자 보호자나 간병인들 대다수가 쌩얼에, 편한 옷을 아무렇게나 걸치고 있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심지어 잠옷과 평상복의 구분이 사라지기도 하는데... 지쳐서 귀찮기도 하거니와 특별히 올 사람도, 보여줄 사람도 없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이 분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말끔하게 단장함으로써 일터에서의 하루를 시작하셨다. 근무시간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은 24시간 간병 체계 속에서도 스스로 기준을 정해 남다른 자세로 임하는 듯 보였다. 간병인은 요양보호사와 달리 국가자격증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서 덜 전문적이라는 얘기도 나오는데, 이 분의 전문성은 그런 자격증 유무로 판단될 차원이 아니었다. 일에 필요한 실제 기술이나 업무 숙련도는 물론, 일을 대하는 태도, 자기관리 등 모든 면에서 ‘와, 진짜 대단하다!’라는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우연히 그분과 길게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겨 간병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현재 어떤 마음인지 등을 들을 수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자기는 어르신들과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작은 거라도 도움 되는 일을 찾아서 했단다. 지금 하는 일이 적성에 딱 맞아서 너무 좋지만 아들 내외한테 말하지는 않았다고 하셨다. 알면 ‘형편 어려운 것도 아닌데 왜 힘든 일을 하냐’며 못하게 할 거 같다고 말이다. 돈 때문에 마지못해 일하는 사람도 많고, 가족의 기대나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의식하여 원하는 일을 못 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인데, 자기 일을 좋아하고 즐기는 행복이 묻어나 반짝반짝 빛이 났다. 자신이 행복해야 남에게도 행복을 전할 수 있다는 걸 고려하면, 이 분으로 인해 흘러갈 좋은 기운은 마르지 않으리라는 기대가 생겼다. 

 

Pleasure- Professional- Pride- Power: 그분을 보면서 떠올렸던 단어들이다. 가식 없는 기쁨과 만족 속에 진정한 프로 정신과 자부심으로 일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 좀처럼 다 충족되기 어려울 수 있는 이 조합을 보며 ‘일과 삶에 대한 자세’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넘생찬빛- 넘치는 생명력으로 찬란히 빛나는 삶! 엄마의 입원 중 만났던 간병인 아주머니 덕분에 인생 슬로건이 생겼다. 그분을 보며 높은 수준의 책임감은 스스로에게 정직한 주체성에서 비롯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누가 시켜서 일하거나 보여주기식으로 했다면 그만큼 기쁘게, 전문적으로 하긴 어려웠을 거 같다. 사실 잘 하는 것처럼 보이거나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건 쉬울 수 있다. 하지만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조차 적당히 하지 않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사람은 알 거다. 거기다 한 번, 혹은 일시적으로 잠깐만 열심을 내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꾸준히 정성스럽게 하시다니..! 그 분 몸에 밴 성실함을 본받고 싶었다.

 

온 정성과 힘으로 가장 좋고 훌륭한 일을 하는 것. ‘최선’의 사전적 의미를 조합하면 이렇게 될 듯하다. 나는 여기에 [정직하고 성실한 태도로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참사람”의 요인이 다 들어있다고 본다. 사람은 저마다 최선의 정도가 다르다. 하는 시늉만 내면서 ‘난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는 이가 있는 반면, 훨씬 더 많이 하면서도 ‘지금 이게 최선일까?’ 자문하며 나은 결과를 위해 애쓰는 사람도 있다. 단순히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의 물리적 양을 말하는 게 아니다. 핵심은, 하나를 하더라도 진실하고 바르게, 제대로 하려는 마음가짐이 차이를 만든다는 점이다.

 

매일 반복되는 거 같고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일상을 한결같이 최선 다해 살아가는 이들이 우리 사회를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드는 주역이라 생각한다. 어떤 자세로 일하고 살아야 할지 돌아보게 하며 깊은 울림을 주었던 그 간병인 아주머니가 내게는 ‘참사람’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나 또한 아직은 한참 부족하지만, 참사람의 기준에 다다를 수 있도록 어제와는 다른 노력을 기울이며 삶 가운데 좋은 열매 많이 맺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