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교육재단 소식지「참사람 36.5˚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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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참사람

코코아처럼 따뜻한 그분

글 : 김성준(참사람 독자)

 

‘참사람 에세이’는 가족, 이웃, 친구, 스승, 우연히 스친 이름 모를 인연 등 지난 시절 내가 만났던 참사람의 따스한 기억을 길어 올리고, 여러분이 생각하는 참사람이란 어떤 사람인지 듣는 창구입니다. 매주 웹진 참사람을 통해 아름다운 사연을 소개합니다.

  

 

참사람 에세이 85번째 편지 

코코아처럼 따뜻한 그분

 

글 : 김성준(참사람 독자)

 

 

내가 살던 작은 어촌에는 자그마한 보건소가 있었다. 보건소에는 중년의 간호사 선생님 한 분이 보건소장이라 불리며 혼자 일하고 계셨는데, 말이 보건소장이지 인근 마을들의 수백 명 주민과 바로 옆에 있는 초등학생들의 건강을 혼자 도맡아 책임지고 계셨다. 보건소 건물은 보건소장님 가족이 사는 집의 부속건물처럼 돼 있었는데, 그래서 보건소장님의 가족은 보건소에서 사는 것처럼 보였다.

 

시골에는 노인들이 많아 보건소를 찾는 분이 끊이지 않았다. 머리가 아파도, 무릎이 아파도, 허리가 아파도, 감기에 걸려도, 몸살을 앓아도, 잠이 안 와도, 심지어 자식이 말을 안 들어도 보건소를 찾았다. 보건소장 선생님 특유의 너그럽고 화사한 웃음 덕에 보건소를 찾는 모든 이들은 마음이 편안해졌고, 그 때문에 보건소는 항상 문전성시였다. 몸이 아프든 마음이 불편하든 찡그린 표정으로 보건소를 찾은 이들은 보건소 문을 나설 때는 항상 웃음을 띠었다.

 

그때 나는 어린 초등학생이었고, 보건소장 선생님이 얼마나 격무에 시달리는지 헤아릴 턱이 없었다. 의사 없이 간호사 혼자서 인근의 수백 명 주민과 학생들을 모조리 책임져야 하는 그 책임과 과로를 어린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그래서 나도 무릎이 까져도 보건소, 돌에 맞아 머리가 찢어져도 보건소, 감기에 걸려도 보건소, 이런 식으로 툭하면 내 집처럼 보건소를 찾았다. 머리가 찢어졌을 때는 보건소장 선생님이 도저히 꿰맬 수 없어 지혈과 소독을 한 후 시내 병원으로 갈 것을 안내 받았지만, 그 외에는 대부분 보건소장 선생님이 나와 친구들의 건강을 책임져 주셨다.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까진 무릎을 보일 때면 따뜻한 손길로 소독을 해주신 후 그 마음만큼이나 따뜻한 코코아를 한 잔씩 주시곤 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그 달콤함은 코코아의 맛이 아니라 보건소장 선생님의 사랑과 봉사에서 느껴지는 향기임을 어른이 되어서야 이해한다.

 

나와 친구들이 보건소장 선생님을 결코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있었다. 1991, 태풍 글래디스가 오던 날이었다. 요즘 같으면 그런 날은 등교를 안 하도록 미리 안내를 받을 테지만, 그때는 그런 게 없었다. 당연히 학교에 갔었다. 하지만 하굣길에 큰 문제가 생겼다. 등하교를 하는 길은 바닷가 모래사장과 뒷산 사이에 난 작은 오솔길이었는데, 뒷산이 무너져 길이 막혀버린 것이다.

도로가 유실돼 버스도 끊겨, 전기도 끊겨, 전화선도 먹통이 돼, 나와 친구들을 지켜주던 우산까지 비바람에 날아가버려 우리 셋은 온몸이 폭풍우에 홀짝 젖고 추위에 오들오들 떨었다. 집으로 가는 길이 막힌 데다 지금처럼 핸드폰도 없을 때라서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학교로 돌아가자.”

 

누군가 제안해서 우리는 학교로 되돌아갔다. 하지만 교실문과 교무실문은 몽땅 잠겨 있었다. 복도에서 비바람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온몸이 젖어서 몸이 파르르 떨렸다. 배도 고팠다. 점심 먹은 지 3시간밖에 안 지났지만 배는 분 단위로 더 고파졌다. 참다못한 내가 제안했다.

보건소로 가자. 보건소장님은 착하니까.”

내 제안으로 우리는 후닥닥 달려서 보건소로 향했다. 학교 정문에서 보건서가 있는 언덕 위까지 가는 길에 토사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엎어져서 또 무릎을 까이고 말았다. 그 자리에서 비를 맞으며 엉엉 울어버렸다. 왜냐하면 얼마 전에 다쳤던 바로 그 무릎이었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넘어질 때마다 꼭 같은 무릎이 까인다.

 

나는 부상을 과장하기 위해 친구들의 부축까지 받으며 절뚝거리며 걸었다. 그 모습을 본 보건소장님이 우산도 쓰지 않은 채 황급하게 우리 쪽으로 달려오셨다. 혹시 내가 태풍 속에서 크게 다친 건 아닌지 걱정하며. 하지만 내 무릎을 보시고는 귀를 잡아당기셨다. 그러고는 우리 셋의 몰골을 확인하시더니 얼른 보건소 안으로 들어가라고 등을 미셨다. 역시 내 말처럼 보건소장님은 착하니까.

 

산사태 나서 길 막혔다며? 너희들 옆 동네 사는 애들 아니니?”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배고프니? 아니, 배가 고프겠구나. 잠시만 기다려라.”

우리는 키득거리며 또 고개를 끄덕였다.

보건소장님은 따뜻한 코코아를 한 잔씩 주시면서 이왕 이렇게 된 거 같이 저녁을 먹자고 제안하셨다. 어차피 지금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전화선이 다시 연결될 때까지는 부모님께 데리러 오라고 연락도 못 드리니까.

 

그날 마신 코코아는 그 무엇보다 따뜻했고 달콤했다. 그리고 그날 보건소장님께서 차려주신 저녁밥은 그 어떤 진수성찬보다 내 기억 깊은 데서 아직 모락모락 김이 올라온다. 그날 태풍 속에서 그대로 집으로 향했다면 산사태 속에서 나는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전화선이 다시 연결되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 우리를 지켜준 건 경찰도 아니고 소방관도 아니고 학교 선생님도 아니고 보건소장 선생님이셨다.

 

 

그때 나는 참 어렸고, 어린이인 내게 친절과 배려를 베풀어주시는 보건소장 선생님의 마음이 당연한 것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보니, 그래서 세상의 냉담함을 여러 번 경험하다보니 그런 어른이 계신 건 아주 드문 일이란 걸 알게 됐다.

 

그 시절, 그 인근 마을 사람들 모두, 심지어 할머니와 할아버지들도 보건소장 선생님께는 교장선생님 못지않게 깍듯하게 인사하고 존경을 표했다. 나는 그런 예우가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모든 분들게 하는 것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보건소장 선생님에 대한 그 존경은 단순히 직업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진심어린 감사에서 우러나오는 것임을 이제는 안다. 왜 다른 직업에 대해서는 그러지 않는데 유독 의료인에게는 선생님이라 부르는지 커 보니 이해가 된다.

 

벌써 30년이나 지나버렸고, 나는 어느덧 어른이 됐다. 보건소장 선생님도 이제 할머니가 되셨을 텐데 그 인자한 미소를 다시 뵐 수 없어 아쉽고 죄송스럽다. 내 어린 시절을 지켜주신 보건소장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다.

 

결국 우리가 아프고 괴롭고, 심지어 생사를 넘나들 때 우리를 가장 먼저 받아주시고 책임져주시는 분들이 바로 간호사 선생님들이다. 그래서 간호사라고 부르지 않고 선생님이라고 존경을 담아 부르는 것이다.

 

코로나 등 온갖 전염병이 닥칠 때 격심한 과로와 위험 속에서도, 응급 외상환자를 받을 때도, 죽어가는 환자의 머리맡을 지킬 때도, 나처럼 철없는 아이의 배고픈 꼬르륵 소리를 듣고 밥상을 차려주실 때도 간호사는 언제나 천사의 모습을 한다. 내가 여태껏 경험했던, 그리고 지금 직장에서 함께 일하며 경험하는 간호사들은 모두 그렇다. 어쩌면 그들은 너무 오랫동안 땅에서 봉사하느라 이제 날개를 잃고 하늘로 올라갈 수 없는 천사들인지도 모른다.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유명한 간호사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과 눈물로 생명을 지켜내는 숱한 간호사 선생님들이든 그들 모두는 우리의 천사다. 그런 점에서 백의의 천사라는 비유는 정말 적절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