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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람 에세이 88번째 편지 

비록 가난하다고는 하나 절개를 잃은 적 없소

글 : 김찬희(참사람 독자)

바람이 유난히도 많이 불던 날이었다. 아직 추웠고, 추운만큼 손발과 코끝이 시려오는 날이었다. 퇴근 시간이 넘은 시각에 난 그저 얼른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걷고 있었다. 지갑을 꺼내 교통카드까지 미리 챙겨 꺼내고 바람을 조금이라도 피하기 위해 머리를 숙이고 걸었다.

열심히 걸어가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를 부를 일은 없다 생각했기에 무시하고 앞을 향해 걷고 있었다. 그런데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제야 뒤돌아보니 웬 허름한 차림의 아저씨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좌로 보나 우로 보나 명백한 노숙자였다. 나와 마주친 눈동자에 그 동안 봤던 몹쓸 뉴스기사들이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노숙인에게 성적인 피해를 당했다거나, 길거리에서 시비가 붙었다거나 하는 류의 기삿거리들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나를 부른 노숙인의 모습에 한껏 경계를 세웠다.

그런데도 그 분은 뭔가 중요한 일이 있는 것처럼 점점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대뜸 뭔가를 내게 내밀었다. 오만 원이었다. 갑작스레 건네진 오만 원을 받지도 않고 나는 손을 내저었다. 그런데도 노숙인은 한 발자국 더 다가오며 오만 원을 흔들었다. 그러면서 입을 열었다.

“이거 떨어트렸어요, 아가씨.”

그제야 나는 아까 지갑을 열다가 오만 원이 떨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갑을 열어 보고 나서야 엄마에게 받은 용돈 오만 원이 사라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심스럽게 오만 원을 받아들면서 복잡한 생각이 오갔다.

나는 죄송한 마음에 지갑에 있던 이만 원을 꺼내서 건넸다. 하지만 노숙인 분은 응당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한사코 거절하신 채 원래 자신이 있던 자리로 돌아가셨다.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노숙인이라는 것에만 색안경을 쓰고 경계를 세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 분은 선한 마음으로 잃어버린 돈을 찾아주려고 하셨던 것뿐 이었다. 노숙인 이었기에 돈을 줍고 모른 채 하며 주린 배를 채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분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돈을 주웠고, 돈을 잃어버린 사람을 알기 때문에 당연하게 찾아준 것이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부끄러워지는 기분이었다. 끝내 마음이 놓이지 않아 지하철로 내려가는 길에 놓인 편의점을 들러 꿀물과 빵을 하나 샀다. 그리고 아까 본 그 곳으로 향했다.그런데 벌써 어디로 가셨는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다시 가방 속에 꿀물과 빵을 넣고 지하철을 탔다. 가방 속에 들어있는 꿀물을 매만지며 다시 한 번 생각에 빠졌다.

내가 그 상황이었다면 당연하다는 듯이 돈을 돌려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많은 갈등이 오갔을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 날은 너무 추웠고, 그 분이 오만 원을 건네주던 손도 발갛게 얼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주머니에 있던 핫팩이라도 쥐어드릴 것을 그랬나 하는 닿을 곳 없는 후회가 맴돌았다.

지금도 종종 그곳을 지나갈 때 그 분이 생각난다. 노숙을 하면서도 자신의 절개를 잃은 적 없는 참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노숙인에 대한 시각도 바뀌게 되었다.

이전에는 술에 취한 무서운 존재였더라면 지금은 저 마다의 신조와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한 사람의 시야를 바꾸어 준 이름 모를 그 분께 다시 한 번 감사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