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람 36.5˚C

참사람 에세이 89번째 편지 

생의 가치와 행복

글 : 안정란(참사람 독자)

당연한 것들을 너무나 당연히 한결같이 행하는 모습이 오히려 ‘기인’처럼 보이는 세상에서, 바로 그런 참사람, ‘기인’을 처음 발견한건 2003년 길 위였었다.

저녁 8시가 넘어 버스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겨울이라 이미 해가 져서 캄캄한 도로 위에 앙칼진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인도 바로 아래에 걸쳐진 도로 위 고양이는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마지막 발악을 하며 거의 죽어가고 있었고, 정류장에선 꽤 많은 사람들이 “어떡해, 차에 치이겠어!”를 연발하며 시선을 쏟고 있었다.

하지만 쉽사리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 성큼 도로가로 내려간 그는 죽어가는 고양이를 두 손으로 안고 올라와 정류장 뒤쪽 화단에 옮기고 정류장으로 돌아왔다.

“동물, 고양이 싫어하잖아? 할퀼 것 같은데 어떻게 안고 올 생각을 했어?”

“좋아하지 않지. 도로 위에서든 화단에서든 죽겠지. 하지만 그래도 생명인데 도로 위에서 개죽음을 당하는 것보단 자연에서 자기 생을 마감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잖아.”

별 뜻 없이 했다는 듯 별스럽지 않게 대꾸했다.

모친이 고관절 수술을 했을 때는 직접 병간호를 위해 휴학을 하고 내려갔고, 이 과정에서 휴학시 등록금 환불이 되지 않는다는 것(2004년, 당시에는 그랬다)을 알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해 제도개선을 위해 노력을 했고, 그 결과 현재 대한민국의 많은 학생들이 중도 휴학 시에도 수업일수에 비례해 환불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남자 대학생이었지만 여자의 임신과 출산 과정시 국가의 지원이 뒷받침 되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이를 적절한 공모전을 통해 ‘산모카드’라는 이름을 제안하기도 했다. 당시(2005년) 국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던 그 제안이 현재의 임신출산카드(바우처)의 초석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훗날 알고 보니 그는 ‘아름다운재단’의 소액 기부자였다. “많이 하면 꾸준하게 할 수 없을 것 같아서”라며 지극히 평범한 이유를 그럴 듯하게 대고 말없이, 묵묵히 매달 5,000원, 10,000원을 10년을 넘게 기부하고 있었다. 

기부가 좋은 건 알지만 소액이라면

“에게, 그거해서 도움이 되겠어?”, “할 거면 더해야지”라며 다음을 기약하는 사람이 많고,

‘꾸준히’가 ‘한 번의 큰 결심’을 행할 때보다 더 어려운 법이다.

그런 그는 2008년 자신의 결혼식에서는 축의금 일부를 동일한 재단에, 두어 권의 책을 쓰고 지인들에게 무료로 나눠준 뒤 받은 10,000원 미만의 돈을 모아 고향의 은사님을 통해 어느 고학생에게 익명으로 전하기도 했다.

흔히 잡은 고기는 밥을 주지 않는 것이 남자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바보다. 잡은 고기와 그 새끼가 얼어 죽을까봐, 굶어 죽을까봐, 전전긍긍하는 사람. 그는 아이를 낳고는 1년간 육아휴직을 했다. 승진과 소속집단에서 도태를 걱정한 여러 선배, 동기, 후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지금이 아니면 볼 수 없을 소중한 순간을 함께'하기 위해 아이가 학교에 가기 전 휴직을 했고, 충실히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매일 밤 그날의 육아일기를 썼고, 이를 출판했다.

세상을 관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자신이 속한 세상에서 그 삶을 너무나 충실하게 사는 사람, 그 과정에서 보이는 작은 것이라도 놓치지 않고, 조금 더 살기 좋은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 말이 아닌 행동으로 지치지 않고 직접 실천하는 사람,

그는 현재 6년의 연애 끝에 나의 10년차 남편이 되었고, 나는 그의 변하지 않는 모습을 지켜보며 변함없이 존경한다.

존경할만한 사람과 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홀로 공부하고 생활할 때보다세상의 많은 변수가 가정과 사회, 생을 흔들곤 하지만 지금의 바위처럼 굳건한 모습으로 참사람의 면모를 계속 지켜나갈 수 있기를, 나 역시 그를 닮아갈 수 있기를 작은 목소리로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