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교육재단 소식지「참사람 36.5˚C」
  • 네이버블로그 바로가기
  • 유튜브 바로가기

  • 지난호보기
  • E-BOOK으로 보기
  • 홈페이지로 보기
ebook보기

참사람 인터뷰

마을을 배움터로 가꾼 참사람, 이규선 평생교육실천협의회 회장

이규선(평생교육실천협의회장)

이규선 평생교육실천협의회 회장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배움을 주고받는 평생학습마을공동체를 구현하는데 앞장서 왔습니다. 전국 최초로 ‘참이슬평생학습마을’을 성공적으로 운영하여 삶터 중심 평생교육의 모델을 제시하였습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 평생교육 그리고 마을공동체는 어떻게 나가야 하는지, 그가 생각하는 참사람의 가치는 무엇인지를 들어보았습니다. 

 

코로나19가 몰고 온 재난 상황은 역설적이게도 그 동안 잊고 지낸 마을의 가치를 되살리는 계기가 되었다. 과거의 마을은 삶을 공유하는 의미 있는 삶터이자 든든한 안전망이었다. 지역주민들은 기쁜 일, 슬픈 일을 함께 나누며 서로가 서로를 돌보고 배려하며 살았다. 

 

하지만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사람들은 돈으로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는 편리함과 익명성 속에 스스로 사회적 고립상태가 되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육아, 청소, 세탁 등 생활의 모든 것을 플랫폼 서비스로 해결하고 있다. 앞집 사람의 얼굴을 몰라도 살아가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다. 이렇듯 관계맺기에서 오는 스트레스보다 혼자라는 자유에 우리는 익숙해졌다.  

 

문제는 위기 상황이 발생할 때다. 코로나19 위기 속 1인 가구는 고립과 불안의 피로를 홀로 짊어지게 됐다. 가족이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학교와 필수 기관이 셧다운 된 상태에서 모든 것을 가족이 해결해야했다. 특히 계속되는 양육과 돌봄의 압박감은 구성원 모두를 지치게 했다. 누군가 그리고 어딘가와 연결되지 않은 부표 같은 삶은 위기에 특히 취약하다. 앞으로도 코로나19 같은 재난이 계속 될 거라는데, 우리는 이 어려움을 어떻게 헤쳐갈 수 있을까? 

 

 

마을공동체에 답이 있다 

“재난 사회가 되면 될수록 연결이 더 중요해져요. 연결을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죠. 마을공동체는 그 연결의 중심축입니다.”
평생교육실천협의회 이규선 회장은 힘주어 말한다. 돌봄과 교육의 공백을 심화시킨 코로나19 상황에서 학교 안 돌봄과 학교 밖 마을교육공동체는 역할을 분담해 위기를 이겨나갔다. 전남 순천에서는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 아이들을 위해 지역아동센터를 중심으로 마을돌봄단 활동이 시작됐다. 예전 밥상머리 교육과 동네 어르신들이 하던 역할을 학부모 등이 참여하는 마을교육공동체에서 한 사례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심화된 재난 사회 속 생태 환경의 필요성이 강화되면서 마을교육 강사와 함께하는 생태환경교육을 운영하기도 했다. 위기가 가져온 사회적 구멍을 마을공동체가 메꿨던 것이다. 

 

20여 년 간 평생학습마을만들기 운동을 주도해 온 이규선 회장은 마을교육공동체의 이러한 저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공동체 속에 서로 연결돼 있던 주민들은 어려운 시기를 함께 이겨냈어요. 서로가 서로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 준거죠.” 평생학습 마을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 이 같은 공동체 문화, 즉 더불어 사는 삶의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 문화를 만들어 가는 기제가 평생교육이고, 마을학교이고, 공동체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평생교육을 통한 더불어 사는 문화를 만드는 과정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공동체 물들이기’다. 어린 시절부터 이웃과 함께하는 삶을 경험한 사람은 ‘공동체’에 대한 좋은 또는 재밌는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기억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엄마와 함께 마을도서관에서 놀던 기억, 평생학습마을축제 무대에서 발표한 기억, 친구들과 함께 마을 봉사를 한 기억. 이 모든 것이 기억으로 쌓여, 더불어 사는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자양분이 된다.  

 

 

‘공공의 행복’을 생각하는 마을공동체 


평생학습마을은 공간 만들기, 관계 만들기, 문화 만들기의 세 가지 실행 단계로 구성된다. 이규선 회장은 참이슬평생학습마을, 경기도형 평생학습마을, 다문화 원룸단지 평생학습마을 등 3차례에 걸친 마을만들기 사업을 통해 주민들의 주체적 역량과 시민성을 키웠다. 처음에는 반대하던 주민들도 서서히 변해갔다. 그저 집이 위치한 공간이던 마을이 마을학교, 북카페, 동아리방으로 리모델링 되었다. 마을아이들은 방과 후에 학원 대신 마을학교 프로그램에서 동네 형, 동생, 친구들과 서로 가르치며 배웠다. 방학이면 1박 2일 캠프도 했다. 어른들은 북카페에서 배우고 싶은 강좌를 열고 이후 학습동아리를 꾸리고, 나아가 협동조합까지 만들었다. 격년제로 열리는 마을축제에서는 주민들이 마을학교에서 갈고 닦은 실력을 무대에서 마음껏 뽐냈다. 그야말로 주민 스스로의 힘으로 삶터 중심의 마을교육공동체를 만든 것이다. 

 

이규선 회장은 ‘평생학습마을은 학습을 통해 마을 주민의 역량을 높이고, 지역 공동체의 가치를 공유하면서 더 나은 지역으로 만드는 운동’이라고 말한다. “평생학습마을 활동의 좋은 점 중에 하나는, ‘내가 누구인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거예요.” 주민들은 평생학습마을 활동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가 만들어지고 그 관계의 질이 높아졌다. 한 사람 한 사람 이웃의 세상과 만난 경험이 자신을 발견하고 역할과 위치를 찾는데 중요한 거울이 되었다. 이러한 경험이 바탕이 되어 주민들은 개인의 행복을 넘어 공공의 행복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고질적인 마을 문제 해결까지  


참이슬마을과 경기도형 평생학습마을의 운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이규선 회장은 더 큰 도전을 했다. 다문화 원룸단지에 평생학습마을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주민의 70% 정도가 외국인 노동자로 구성된 원룸단지는 생활쓰레기 문제와 치안 등의 고질적인 문제를 겪고 있었다. 주민들의 정주의식과 시민의식 부족, 지역과 시정에 대한 무관심은 지역공동체 형성에 큰 걸림돌이 되었다. 모든 것이 열악한 환경이지만, 그 속에서도 마을만들기의 비전을 공유할 사람들을 찾았다. 2,000여명이 넘는 지역 주민들을 일일이 찾아가 만나고 설득하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수없는 거절에도 뜻이 맞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규선 회장은 이들을 사람책으로 엮어 풍성한 삶의 경험과 지혜를 함께 나눴다. 덕분에 청소년들은 언제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든든한 동네 어른을 알게 되었다. 또한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마을환경감시단을 만들고 마을포럼과 민관 학습모임을 개최해 숙원사업인 쓰레기 문제를 해결했다. 정주의식도 낮고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로 골치 아팠던 마을이 살맛나는 따뜻한 마을로 변신하게 되었다.  


 

든든한 노후보장보험을 들었는가 

바쁜 일상에 묻혀 다른 이의 삶을 돌아보기 어려운 게 우리 현실이다. 그럼에도 ‘인간답게 사는’ 마을문화를 만들고자 주민들의 삶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이규선 회장. 평생학습마을이라는 새로운 길을 만들며 걸어온 그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졌다.
“오랜 시간 쌓인 ‘평생학습마을만들기’ 암묵지를 형식지로 만들어 전해야겠다는 책임감이 듭니다. 마을공동체에 대한 ‘기억자산이 사라지기 전에 다음세대에게 전달하고 싶어요. 인간답게 살기 위해 서로 배우는 지역을 만드는 일을 그냥 삶으로 하고 싶네요. 최근에는 평생학습마을이 시작된 지 15년인데, 그 성과가 무엇인지 측정하고 분석하는 연구에 들어갔어요. 어떤 결과가 나올지 기대 됩니다.” 

 

현재 직원들과 함께 살고, 함께 일하는 공동체적 삶을 일구어 나가고 있는 이규선 회장. 힘든 일도 즐거운 일도 함께 나누는 이웃이 있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한다. “평생학습마을공동체나 마을교육공동체는 마을주민이 배움으로 최소한의 안전망을 확보하는 활동이자 가장 효율적인 노후보장보험이라고 생각해요.”

재난이 일상이 된 시대에 우리는 ‘마을공동체라는 든든한 노후보장보험’을 들었는가 되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