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교육재단 소식지「참사람 36.5˚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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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참사람

진정성

글 : 장태기(참사람 독자)

 

‘참사람 에세이’는 가족, 이웃, 친구, 스승, 우연히 스친 이름 모를 인연 등 지난 시절 내가 만났던 참사람의 따스한 기억을 길어 올리고, 여러분이 생각하는 참사람이란 어떤 사람인지 듣는 창구입니다. 매주 웹진 참사람을 통해 아름다운 사연을 소개합니다.

  

  

참사람 에세이 118번째 편지 

진정성

 

: 장태기(참사람 독자)

 

 

20대 초반, 나는 대학 생활과 더불어 대외활동도 병행했다. 그중 백혈병 환자를 돕는 봉사활동 모임에서 한 명의 사람을 알게 됐다. 20대 초·중반 청년 사이에 다소 나이가 있어 보인 그분은 대학생 때부터 10여 년 넘게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었다고 했다. 누구보다 열의를 갖고 모임 내 궂은일을 비롯해, 묵묵히 자기 역할을 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래서 그분과는 가깝게 지내고 싶어 먼저 다다가 여러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삶의 지혜를 비롯해 봉사활동에서의 필요한 자세도 배울 수 있었다.

 

나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봉사활동을 이어가기 어려울 때, 그분과도 아쉬움을 담아 인사를 이렇게 건넸다. “항상 잘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중에라도 뵐 수 있겠죠?” 그분은 답했다.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저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계속 이곳에 있을 것 같아요. 부담 갖지 말고 언제든 찾아오세요.” 당시에는 그 말은 그저 주고받는 인사치레로만 생각했었다.

 

이후, 7년이란 시간이 흘러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으로서 생활하면서 그동안 잊고 지내던 열정을 되찾고 싶은 마음에서, 다시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여전한 모습으로 그분이 계셨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그분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는데, 그분 역시 나를 기억해주고 있었다. 마치 7년 전으로 시간이 되돌아간 것만 같았다. 나와는 달리 그분은 변함없이 백혈병 환자들을 돕고 있었다. 봉사활동이 아닌 개인적인 얘기들을 나누고자 약속을 잡고 여럿 얘기를 나누면서 절로 고개가 숙어졌다그분도 평일과 주말에 일하고 남는 시간과 더불어, 봉사활동을 위해 자기 휴가까지 조정하고 계셨다. 그리고 이러한 생활을 대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왔다. 또한, 혈액 및 백혈병 관련 학술 자료들을 작게 인쇄하여 그것을 들고 다니며 읽는 모습도 놀라웠다.

 

 

 

그래서, 그분의 이야기가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고 알려지면 그 모습이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의 변화도 이끌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분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저는 결코 대단한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제가 한 일이 알려지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저는 그저 그림자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림자. 스마트폰을 비롯한 SNS가 발달한 세상에서는 자신이 마치 세상의 중심인양, 즐겁고 행복하고 심지어는 미담을 자랑하는 것을 숨기지 않는데, 그분을 보면서 다시 한번 세상에서 정말 중요한 진정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대중 앞에 진정성을 호소해야만 생겨나는 것이 아닌, 자기만의 소신과 그것을 이행하고자 했을 때 비로소 진정성이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그분은 자신이 그림자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며 뒤로 숨고 있지만, 가슴 속 따뜻함을 품고 있는 사람은 결코 숨길 수 없는 법이다. 그분 덕분에 나를 기준으로 누군가를 도왔다는 만족과 자만에 빠졌던 과거를 성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눔이나 봉사활동과 같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관계의 장에서는 똑같은 사람으로서 그들과 천천히 눈을 맞추고 발맞춰 걸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정성은 남이 아닌 내 마음속에서 최선과 감동이 만났을 때 비로소 빛이 나는 것임을 그분을 통해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