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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참사람

붉은 카네이션과 온정

글 : 김은서(참사람 독자)

 

‘참사람 에세이’는 가족, 이웃, 친구, 스승, 우연히 스친 이름 모를 인연 등 지난 시절 내가 만났던 참사람의 따스한 기억을 길어 올리고, 여러분이 생각하는 참사람이란 어떤 사람인지 듣는 창구입니다. 매주 웹진 참사람을 통해 아름다운 사연을 소개합니다.

  

  

참사람 에세이 133번째 편지 

붉은 카네이션과 온정

 

: 김은서(참사람 독자)

 

 

이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당시 나는 한 반에 학생 수가 체 15명도 되지 않는 작은 시골 중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2015515일 그날은 유난히도 따스했던 스승의 날이었다. 그날이면 어김없이 나는 체육관에서 열리는 따분한 행사에 참여해 목청이 터져라 스승의 은혜를 불러야만 했다. 그런데 그 날은 예년의 그것과 조금은 달랐다. 평소 같았으면 조용히 지나갔을 담임선생님이 나를 교무실로 직접 호출하셨기 때문이다. 순간 나는 내가 선생님 가슴팍에 아무렇게나 꽂아둔 카네이션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러는 것인지 흠칫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이내 내 걱정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일이 되었다. 선생님은 단지 심부름을 시키려 나를 부르신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 조화 카네이션 한 송이를 주며 나에게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은 내가 학교에 등하교하며 수백 번도 더 지나쳤던 학교 앞 작고 협소한 경비실이었다. 그곳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학교를 지키는 늘 노란색 조끼 차림의 한 할아버지가 계셨다. 그 할아버지는 아침 7시가 되기도 전 학교에 출근하시어, 하루 종일 그 좁은 곳에 계시다가 가장 늦을 무렵에 퇴근하시는 그런 분이셨다. 나는 아무 거리낌 없이 그 조화 카네이션 한 송이를 할아버지께 가져다 드리려 정문 쪽으로 향했다. 경비실은 너무 협소해 사람 2명이 한 데 있으면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오늘 스승의 날이라 선생님께서 이거 가져다 드리라고 해서요. 스승의 날 축하드려요.”

 

나는 거의 아무런 감정 없이 꽃을 건네며 말했다. 이에 할아버지는 아이고 새삼스럽게 뭘 이런 걸 다 가져왔다냐.. 나는 참말로 괜찮은디..”하시며 멋쩍은 웃음만 지으시는 것이었다. 말은 그렇게 하셨지만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누가 봐도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실제로 할아버지는 그 카네이션을 1년 내내 조끼 윗주머니에 끼어놓고 경비 일을 보셨으니 말이다. 허나 나는 아쉽지만 그것이 우리 인연의 끝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학교가 늦게 끝나 집으로 걸어갈 채비를 하는 중에 할아버지께서 나를 부르셨다. 할아버지는 연신 자신의 차를 타고 가라며 나를 붙잡았고, 나는 그 성화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할아버지의 차를 얻어 타야만 했다. 덜컹덜컹 거리는 엔진 소리에 누가 봐도 낡은 기색이 역력한 먼지 묵은 그 옛날 차를 말이다. 할아버지는 내 집까지 걸리는 10분 남짓한 시간에 그 날 내가 준 카네이션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놓으셨다. 그때 진심으로 고마웠다며 지금까지도 그 카네이션을 간직하고 있노라고 말이다. 그러고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셨던 할아버지는 연신 십자성호를 그으시며 나를 위한 암묵의 기도를 하시는 것이었다. 그리곤 나에게 무겁게 한 마디를 건네셨다. 자신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아들이 몇 년 전에 지병으로 하늘로 갔다고. 그리고 나를 봤을 때 꼭 그 아들이 다시 돌아온 것만 같은 기분이 느껴지더라고. 나는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얼마간 조용히 있다가 조심스레 말했다.

 

나에게는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돌아가신 친할아버지가 계시는데, 그래서 친할아버지에 관한 기억이 아예 없다고, 그런데 이렇게 할아버지를 만나 뵈어 진심으로 기쁘다고 말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시고도 할아버지는 또 연신 십자성호를 그으시며 무엇이라 웅얼웅얼 기도를 해대셨다. 차에서 내리기 전 할아버지가 물었다. “아야, 너는 먹는 거 뭐 좋아 허냐?” 나는 대충 얼버무리며 ? 저 다 좋아해요. .. 라면 좋아해요. 라면!”이라 말하고 후딱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뒤로도 할아버지는 나를 데려다 주실 때면 늘 컵라면 몇 개를 검은 봉지에 싸 전해주시곤 하셨다. 그리고 우리의 이런 온정어린 만남은 내가 중학교를 졸업했던 2016년 말까지 지속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던 2017년 어느 가을날이었다. 할아버지의 부재중 전화가 걸려온 것을 보고 나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유난히도 긴 통화연결음 끝에 한 수녀님이 전화를 받았다. 여기서부터 나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수녀님은 내게 할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시다고, 그래서 지금 전화를 받을 여력이 못 되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것이 할아버지와 나의 마지막 연락이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가족을 제외한 어느 누구에도 그렇게 순수하고 온정어린 사랑의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

 

생각해보라. 지금 같은 각박한 시대에 이렇게 꾸며지지 않는 순수한 형태의 따듯한 사랑을 누구로부터 느낄 수 있단 말인가? 참사람이란 실로 이런 것이다. 그들은 얼토당토않은 위선적인 착한 행위로 자신을 참사람이라 포장하는 가벼운 사람들이 아니다.

진정한 참사람이란 마치 노란 조끼 차림의 학교 경비실 할아버지처럼 무심코 지나치면 인지도 못할 그런 자리를 묵묵히 지키면서도,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묵직한 선함과 온정을 타인들에게 전하는 진중한 이들이라 할 수 있다. 이제는 몸도 마음도 다 자라버린 어엿한 대학생으로서, 나 같이 부족한 이에게도 따듯한 사랑을 베풀어주셨던 할아버지께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고 싶다. 더불어 지금부터는 나도 누군가에게 그러한 따듯한 사랑을 베풀어 보겠노라는 다짐을 마음속 깊이에서 다져본다. 이제는 다신 느낄 수 없는 할아버지의 투박하고 진심 어린 그 사랑을 기억하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