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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람 인터뷰

'가족'을 만들어가는 '총각 엄마', 김태훈 대표

김태훈(사단법인 <우리들의 성장 이야기> 대표)

 

 

「가족 : 명사. 혈연을 기반으로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가족’에 대해 우리가 흔히 품고 있는 이 명제에 의문을 품은 이가 있습니다. 혈연에 기반하지 않아도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17년의 세월 동안 몸소 보여주고 있는 김태훈 대표입니다.

 

그는 그룹홈 ‘가족’과 ‘한식구’를 운영하며 스무 명이 넘는 북한 이탈 청소년들을 양육하고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시켰습니다. 지난 2011년에는 사단법인 ‘우리들의 성장 이야기’를 설립해 북한이탈주민 인식 개선 사업, 통일 공감대 형성, 지역청년 지원 등 사회통합의 관점에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든든한 부모였던 그는, 이제 그룹홈을 넘어 현 시대 북한 이탈 청소년들을 위한 목소리를 내며 사회적 가치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김태훈 대표를 만나 그 히스토리를 들어보았습니다.

 

 

 

‘차도남’이던 그가 ‘총각엄마’로 변신한 사연

그룹홈, 북한이탈청소년, 사회공헌 활동...김태훈 대표와는 하나같이 거리가 먼 키워드였다. 아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삶의 형태였다. 강남 8학군 출신의 잘 교육받은 디자인 전공자이자 회사원, 이른바 ‘차도남’이었던 김태훈 대표는 아이들을 만나기 이전의 삶이 ‘부끄럽다’고 고백한다.

 

“전혀 관심이 없었죠. 우물 안 개구리였어요. 우연히 TV에서 마주하면 저렇게 힘들고 어려운 친구들이 있구나, 잠깐 눈시울을 붉히고 뒤돌아서면 망각하는 딱 그 정도. 더 나아가 행동할 생각은 없고, 그 순간의 감정이 제 삶에 영향을 주지도 못했고요. 무지하기만 했던 그때가 저에게는 가장 부끄러운 시절입니다."

 

그의 삶에 거대한 변화가 찾아온 계기는 바로 봉사활동이었다. 당시 재직 중이던 회사 선배의 권유로 큰 뜻 없이,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한 북한이탈 청소년 멘토링 봉사에 푹 빠지게 된 것이다. 봉사 단체의 대표가 된 그는 통일부 소속의 북한이탈주민 교육기관 ‘하나원’에 방문할 기회를 얻게 되고 그 곳에서 다시 큰 울림을 받았다.

 

“2년 6개월 간 매 주말마다 하나원을 찾아갔어요. 거기에서 아들과 함께 건너 온 한 어머님을 만나게 됐는데, 남한 사회에 어떻게 적응하고 아이를 교육시켜야 할지 고민이 많으셨습니다. 도와드리겠다고 다독이고 약속드렸죠. 퇴소 이후 살고계신 곳에 방문했는데, 어머님이 생계를 위해 바빴던 탓에 아이 혼자 쓸쓸하게 텅 빈 집을 지키고 있더군요. 같이 밥을 해먹고, 한참 이야기를 나눈 후 돌아가려는데 하루만 주무시고 가면 안되겠냐며 아이가 저를 붙잡았어요. ‘이 친구에게는 내가 필요하구나. 보살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바로 교보생명 희망다솜 장학생이기도 한 염하룡군이었다. 이러한 인연을 계기로 한 명씩 아이들이 늘어나며 정식 그룹홈이 되었고 그렇게 1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하룡이는 어느새 건장한 청년이자 어엿한 회사원이 되어 지금은 김태훈 대표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가 되었다.

 

 

‘총각엄마’의 양육 철학

그룹홈 ‘가족’과 ‘한식구’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딘가 남다르다. 어떤 친구는 전국 중고생 자원봉사대회에서 장관상을 받기도 하고, 어떤 친구는 학교 학생회장을 역임했다. 모난 구석 없이, ‘참 잘 자라주었다’는 주변인들의 칭찬이 잇따른다. 김태훈 대표만의 양육 철학이 궁금하다.

 

“저는 저희 집이 ‘기관’이나 ‘시설’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건 외부에서 규정한 시각이지, 저한테는 정말 ‘우리 집’이고 ‘우리 가족’입니다. 집에서 사랑받는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사랑받아요. 양육의 기준은 ‘내가 어떻게 자랐더라? 우리 부모님이 나한테 어떻게 해주셨더라?’는 질문입니다. 저희 부모님이 저에게 베풀어주신 애정과 사랑이 제가 아이들을 기르는 나침반이 되었어요. 식구가 많지만 빨래나 설거지도 제가 다 해요. 저도 학교 다닐 때 부모님이 다 해주셨거든요."

 


무엇보다 김태훈 대표가 가장 챙기는 부분은 바로 디테일이다. 그를 가장 발끈하게 만드는 건 ‘엄마아빠가 없어서 저럴 것이다’는 편견 섞인 시선이다. 행여나 아이들이 그런 소리를 들을까 빠진 준비물은 없는지, 옷차림이 남루하지는 않은지, 가정통신문에는 어떤 내용들이 있는지 살피고 또 살핀다. 그에게는 가슴 아픈 기억이 있다.

 

“저희 아이들이 학교에서 인기가 정말 많아요. 학생회장을 뽑는 선거에 추천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학생회장이 되면 부모님들이 해야 할 일들이 많다보니 선생님들께서 그런 이야기들을 하세요. ‘너는 그룹홈에서 생활하고 있으니 부모님 지원이 어렵지 않겠느냐. 후보에서 사퇴하는 것이 낫겠다.’ 이러한 시각이 저와 아이들에게는 상처가 됐어요."

 

이 일은 그가 적극적으로 ‘치맛바람’을 휘두르게 된 계기가 되었다. 학부모 간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학교운영위원이 되어 교내 살림을 돌보거나, 소풍이 있는 날에는 김밥, 육전, 과일 등등 정성이 가득 담긴 5단 도시락을 만들어 선생님들 식사로 보냈다. 밤새 반 친구들을 위한 개인용 간식 패키지를 만들어 돌리기도 했다. 김태훈 대표의 지원사격으로 아이들은 자신감을 얻었고, 선생님들은 관점이 바뀌었다. 그룹홈에서 생활하는 친구들도 충분히 학교임원을 할 수 있는 문화가 정착 된 것이다.

 

“학생회장에 출마한 친구가 직접 쓴 연설문을 읽고 엉엉 울었습니다. ‘저는 엄마아빠도 없고, 북한이 고향이고, 공부도 못하지만 그럼에도 학교에 봉사하고 싶어 학생회장에 출마하게 되었습니다. 저 같은 배경을 가진 학생도 학생회장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는 내용이었어요. 진심이 통했는지, 정말 학생회장이 되었어요. 소식을 듣고 학교로 뛰어 갔어요. 당선공고를 사진으로 남겨두려고요. 이후 저도 전교학부모회장이 되면서 더욱 학교살림을 챙기게 되었죠."

 

대부분의 북한이탈 청소년이 대안학교에 진학하는데 비해, 김태훈 대표는 일반 학교를 고집한다. 그의 입장에서도 훨씬 손이 많이 가고 신경 쓸 부분이 많은 일이다.

 

“저희 아이들이 사회에 잘 섞여서 평범하게 성장하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굳이 특별한 학교에 갈 필요가 없겠죠. 더불어, 아이들의 보호자로서 제가 물려줄 수 있는 가치적 자산이 무엇일지 고민했어요. 바로 동기동창이더군요.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이것만큼 중요한 자산,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자산은 없을 것 같았어요, 성인이 되어서도 나를 지탱해주는 선배와 후배, 동기가 있다는 건 큰 힘이 되잖아요."

 

김태훈 대표는 전략적으로 그룹홈 아이들이 진학하는 중고등학교를 K중학교와 D고등학교로 점찍었다. 공통점은 바로 ‘사립’이라는 것. 공립과 달리 사립 중고등학교는 대체로 학교 선생님이 바뀌지 않는다는 점을 노렸다. 북한이탈 청소년과 여러 해 함께 하며 경험치가 쌓일 것을 기대한 것이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2개 학교는 이제 북한이탈 청소년을 대하는 노하우를 갖추었고, 교사들은 모두 준비 되어 있다. 한 선생님은 북한이탈청소년의 교육지원활동을 위해 대학원 진학은 물론 관련 주제의 논문까지 집필하기도 했다. 김태훈 대표의 뚝심이 학교 문화를 바꾼 것이다.

 

이외에도 그에게는 물려주고 싶은 가치적 유산이 너무나 많다. 매해 설과 추석, 김태훈 대표는 아이들과 함께 철원으로 가 이북을 향해 차례를 지낸다. 그룹홈 친구들 대부분은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차례상은 어떻게 차리는지, 절은 어떻게 하는지 삼촌이 하는 걸 잘 보고 배워서 독립하면 스스로 하라는 의미, 그리고 이렇게라도 돌아가신 부모님을 기리고 식사를 대접하라는 의미다. 이러한 경험은 아이들이 추후 가정을 꾸린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질 소중한 배움이다. 

 

 

현재 그룹홈에는 공식적으로 10명의 북한이탈 청소년이 김태훈 대표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14명이다. 퇴소 이후 돌아온 청년, 퇴소해야 할 나이지만 여전히 함께 하고 있는 청년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동보호시설은 만 18세가 되면 퇴소를 해야 해요. 법이 개정이 됐다고는 하지만 당장의 현실은 요원하죠. 갓 스물이 된 청년들이 당장 사회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아요. 준비 기간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에게 묻고 싶어요. 여러분은 만 18세가 된 가족을 바깥으로 내보내시나요?”

 

 

아픔을 치유하는 아이들

그는 아이들이 가진 트라우마와 상처를 해소하고 문화적 소양을 길러주기 위해 여러 활동들에 도전했다. 김도현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가족’에 출연해 그들의 떠들썩한 일상이 전국 영화관에 걸리기도 했고, 예술 전공을 발휘하여 그림 전시회를 기획했다. 

 

“제1회 전시회는 주제가 ‘분실물보관소’였어요. 우리가 잊고 살았던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전시회에 오시는 분이 잊었던 것들을 찾아가는 형태의 전시였죠. 한 친구는 상실의 주제가 ‘고향’, ‘가족’, ‘친구’였는데, 이걸 가면으로 만들었어요. 아빠의 가면, 엄마의 가면, 친구의 가면...보고 싶은 가족과 친구의 가면을 쓰고 거울 앞에 서면, 그렇게 나마 만날 수 있다는 의미였죠. 가면에는 누구의 가면인지, 어떤 추억이 있는지 깨알같이 기록을 해두었고요. 한 관람객께서 ‘아빠’ 가면을 써보고는 눈물을 쏟으셨어요. 당신만의 기억이 떠오르신 거겠죠. 이렇듯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고 잊어버린 것들을 회복하는 과정이 아이들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2번째 전시회의 주제는 ‘우리 이야기 들어주실래요?’였다. 아이들을 향한 세간의 질문은 대부분 부정적인 뉘앙스였다. 얼마나 굶주렸는지, 공개처형을 실제 본 일이 있는지 등. 하지만 아이들에게 북한은 나의 가족과 고향, 추억이 있는 곳이었다. 항상 부정적인 질문들만 던지는 이들에게 화가 난 아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의미를 담아 작품을 만들었다. ‘너희들이 궁금한 것 말고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이 전시의 주제는 도서 ‘밸이 난다’의 출간으로 이어졌다. 밸이 난다는 ‘화가 났다’는 뜻의 북한말이다. 아이들은 영화, 책, 미술작품의 작가가 되는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해냈다.

 

여행과 봉사 또한 아이들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중요한 매개체가 되었다. 남한으로 오는 주요 경로 중 하나가 캄보디아의 메콩강을 건너서 오는 길이다. 김태훈 대표는 이 지역에 아이들이 갖고 있는 트라우마를 극복시키기 위해, 함께 태국으로 떠나 가이드와 함께 다시 메콩강을 건너는 경험을 했다. 그때의 상황과는 다르다는 것, 지금은 이처럼 보호받고 안전하며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몸소 체화시켰다.

 

“메콩강 인근 시장에서 북한 군인을 마주친 일이 있어요. 모두가 당황했죠. 뒤늦게 알았는데, 어떤 친구는 몰래 돌멩이를 주워 호주머니에 감춰주기도 했다더군요. 무슨 일이 생기면 던지고 도망을 가려고요. 결과적으로 불안한 상황을 똑바로 마주하는 것이 이 친구들의 트라우마 극복에 큰 도움이 되었어요.”

 

그리고 현지 소수민족을 돕는 봉사활동도 이어졌다. 치앙라이의 아카족은 태국의 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이다. 북한이탈주민 바라보는 남한 사회의 시선과 다르지 않다. 김태훈 대표와 아이들은 그 곳에서 우물과 길을 만들고, 집을 짓고, 놀이 봉사를 했다. 

 

“받는 것에만 익숙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지 않아요. 봉사는 선물이랑 똑같아요. 선물을 주려고 준비하는 과정에 굉장한 고민이 필요하고, 또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가 즐겁잖아요. 누군가를 돕는 과정이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일인지, 또 얼마나 많은 고민이 필요한 일인지 아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요.”

 

 

그룹홈을 넘어, 사회통합의 영역으로

오늘 날 북한 이탈 주민, 북한 이탈 청소년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떨까? 김태훈 대표의 표현을 빌자면 ‘뱀파이어’같단다. 늙지도 변하지도 않는 뱀파이어처럼, 몇 십 년 전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못 살고, 못 먹고,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사회에 어떤 기여도 하지 못하고 도움만이 필요한 존재. 심지어 북한에서 어떤 교육을 받고 왔을지 모른다는 공포 섞인 핀잔, 남한에도 힘든 사람들이 있는데 왜 북한 사람들을 도와주냐는 편가르기 식의 시선도 겪었다. 김태훈 대표는 이러한 편견에 맞서기 위해 2011년 사단법인 ‘우리들의 성장 이야기’를 설립했다.

 

“북한이탈주민 인식 개선 사업을 하고 있어요. 동서남북 국제워크 캠프를 운영해요. 여기서 동서남북은 동독, 서독, 남한, 북한의 줄임말입니다. 분단을 겪었던 국가의 청년들이 모여 통일과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대본쓰기부터 연기까지 직접 해내는 ‘3분 8초 단편영화제’를 운영해요.

이외에도 유튜브 ‘총각엄마TV’를 통해 우리가 사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드리고 있죠.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면 분명 느끼는 부분이 있으실 것 같았어요.”

 

더불어 청년들의 사적인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는 ‘청년 구술 생애사’는 북한이탈주민이 아닌 지역 청년들을 위한 사업이다.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의 구술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반성해야하고 청년에게 눈높이와 시선을 맞춰야 하는지 이야기하고 싶었다. 북한이탈 주민을 넘어, 이제는 사회통합의 차원에서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 철원에서 운영 중인 최북단 카페 '오픈 더 문'     © 교보교육재단

 

그에게는 여전히 남은 숙제가 많다. 김태훈 대표는 지난 2015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다양한 사회적 기업들을 만났다. 사회적 기업은 지역사회가 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면서 이윤도 추구해야 한다. 가장 어려운 것은 후자였다. 그런데 막상 가서 봤더니 기대와 달리 거창한 아이템, 대단한 시스템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다들 ‘먹거리’를 팔고 있었다. 커피와 브런치, 병맥주 같은 것들을 관광상품과 연결지어 수익을 내고 사회문제해결에 기여하고 있었던 것. 

 

이 경험을 줄곧 가슴에 품고 있던 김태훈 대표는 몇 해 전 철원에 우리나라의 ‘최북단 카페’를 만들었다. 바로 ‘오픈 더 문’이다. 김태훈 대표의 그룹홈에서 자란 청년 두 명이 그 곳으로 주소지를 옮겨 바쁘게 경영하고 있다. 빠르게 인구가 소멸해가는 철원 지역에 청년들을 유입하고, 접경지대의 상징성에 맞는 공익 프로젝트의 거점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그는 북한이탈주민, 지역, 청년과 함께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방법들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다. 이토록 밀도 높은 삶을 살아온 그는 아직도 부족하다고 이야기한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그의 눈빛이 반짝거린다.

 

“계속 도전하는 것. 그리고 우리 집의 아이들을 ‘가족’으로 계속 잘 키워내는 것. 제 인생의 남은 숙제입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던 중 수업을 마친 초등학생 한 명이 집 안으로 뛰어 들어와 학교에서 직접 만든 물로켓을 자랑한다. 그룹홈의 막내이자 초등학교 5학년인 준성이다. 김태훈 대표는 ‘집안의 분위기를 보려면 막내가 어떻게 지내는지만 살피면 된다’며, ‘막내가 경직되어 있고 기가 죽어 있는 집은 뭔가 문제가 있는 거예요. 형들 간의 다툼, 또는 서열 욕심이 문제가 될 수도 있겠죠. 저희 집은 막내가 대장입니다.’라고 작게 속삭인다. 

그래서일까. 과연 대장답게 막내 준성이의 목소리가 유난히 우렁차다. 북한이탈 청소년이 더 이상 우리사회의 ‘소수민족’으로 남아있지 않길 바란다는 김태훈 대표. 준성이의 해맑은 미소를 보면 결코 불가능한 꿈이 아닐 것이다.

 

 

 <유튜브 '총각엄마TV'에서 그룹홈 가족들 만나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