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호보기
  • E-BOOK으로 보기
  • 홈페이지로 보기
ebook보기
??? ????

참사람 인터뷰

장벽없는 세상을 꿈꾸는 청년들, 서배공(서울대학교 배리어프리 보장을 위한 공동행동)을 만나다

서배공(서울대 배리어프리 보장을 위한 공동행동)

인근에 소문난 맛집에 찾아가 음식을 맛보고, 요새 인기 있다는 전시회를 방문해 작품을 감상하거나, 야외의 선선한 바람을 맞으러 숲길을 찾는 일.

 

누군가에게는 지극히 보편적인 이 일상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할 도전이자 좀처럼 풀기 어려운 문제일 수 있다. 문턱이 높아서, 경사로가 없어서, 혹은 내부 공간이 충분하지 않아서 번번이 발길을 돌려야만 하는 휠체어 사용자의 모습이다.

 

이러한 사회의 면면들을 유심히 살펴본 청년들이 있다. 비장애인의 관점으로 설계된 인프라가 과연 당연한 것인지 질문을 던지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떤 차별이나 불편함 없이 함께 생활하는 세상을 꿈꾼다는 그들. 바로 서울대학교 학생단체 서배공(서울대학교 배리어프리 보장을 위한 공동행동)의 구성원들이다. 

 

서배공의 김지우 대표(사회학과 20학번), 정보민 배리어프리맵팀장(윤리교육과 20학번), 김민지 경사로설치팀장(윤리교육과 21학번)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항해의 시작

동아리 회식도, 팀 과제를 위한 카페 찾기도 좀처럼 쉽지가 않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메뉴 선호도와 가격 등으로 약속 장소를 잡을 때 장애 학우는 ‘들어갈 수 있는 장소’인지 먼저 살펴야했다. 서울대 사회학과의 재학생이자 휠체어 사용자인 김지우 대표는 이러한 학교 내외의 배리어프리(barrier-free : 장애인 및 고령자 등의 사회적 약자들의 사회 생활에 지장이 되는 물리적인 장애물이나 심리적인 장벽을 없애기 위해 실시하는 시책) 환경에 문제의식을 품고 있었다.

 

“장애 학우의 권리에 대해서는 다들 교육권을 첫째로 꼽으세요. 하지만 이 교육권이라는 것이 대부분은 ‘원활하게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강의환경’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요. 사실 대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관계맺음’이잖아요.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학내외의 전반적인 환경들이 쉽지 않아요.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는 식당에서 모임을 가진다? 장애 학우는 너무나 손 쉽게 소외되는 거죠. 서배공은 ‘관계맺음’에 대한 보장이 필요하다는 고민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이 공론화한 고민과 의문은 서울대학교 학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한 명, 그리고 또 한 명씩 사람이 모였다. 21년 4월, 배리어프리라는 목표를 향해 항해를 시작했던 작은 돛단배는 1년이 지난 현재 40명의 선원들을 태운 범선이 되었다.

 

 

남다른 서배공의 저력

이제 갓 1년을 넘긴, 비교적 구력이 짧은 단체임에도 서배공이 창출한 성과물은 결코 만만치 않다. 800여개가 넘는 서울대 인근의 상권 전수조사를 통해 휠체어 이용이 용이한 80곳의 가게를 발굴했고, 서울관광재단 및 관악구장애인복지관 등 공공기관의 도움을 이끌어낸 끝에 32개소의 신규 경사로를 설치했다. 특히 리플릿과 카드뉴스 등을 통해 배포한 배리어프리맵 ‘샤로잡을지도’는 관악구 주민과 서울대 학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가장 기뻐요. 한 학생이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온 적이 있어요. 아버님이 휠체어 사용자라며, 가족이 함께 갈만한 식당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고요. 무기력하게 집에만 계시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는데, 샤로잡을지도가 생기고 난 후부터는 지도에 나온 식당들을 하나하나 ‘도장깨기’ 해보는 취미가 생기셨다고 해요.

비장애인임에도 일부러 샤로잡을지도의 식당들을 이용해주시는 경우도 있어요. 장애인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가게가 사라지면 안된다며, 지속가능할 수 있게 매출을 만들어주시는 거죠.”

 

중요한 것은 이용자 중심의 정보

서배공이 제공하는 정보는 시중의 그 어떤 무장애 지도보다 현실적이다. 서울관광재단과 협동조합 무의(Muui)가 제공하는 기준을 참고했지만 거기에 서배공만의 기준을 더했다. 사실 무장애의 기준이라는 것이 무 자르듯 자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휠체어의 종류, 이용자의 근력, 장애정도 등에 따라 이용이 쉬울 수도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서배공은 이용자가 직접 판단할 수 있도록 최대한 자세히 안내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입구의 폭, 경사로의 높이, 내부 사진 등을 카드뉴스 형태의 콘텐츠로 제작해 배포했다.

 

“기준치를 최대한 낮게 잡았어요. 우선 동행이 한 분 이상 존재한다는 전제를 바탕에 두고 조사를 했습니다. 경사로가 있다고 해도 경사가 높거나, 밖으로만 열리는 문이라면 혼자서는 진입이 어렵거든요. 이런 디테일한 조건들을 모두 만족 시키는 가게를 찾는 건 씁쓸하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타협점을 두고, 까다롭게 선별은 하되 최대한 많은 정보를 담아 개인이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희만의 원칙입니다.”

 

이러한 성과의 중심에는 체계적이고도 유연한 조직 운영 시스템이 존재했다. 코로나 팬데믹 시점에 결성된 서배공은 별도의 거점 없이, 온라인 등 비대면 중심으로 사람을 모았음에도 자신들만의 효율적인 운영 방식을 찾아냈다.

 

“서배공은 학내대응국과 학외대응국으로 나뉘어요. 학내대응국의 미션은 ‘배리어프리한 서울대 학내 환경 만들기’입니다. 시설이나 행사 운영 등에 있어 적절한 배리어프리 가이드라인을 학교측에 제시하고 환경을 개선하고자 노력 중에 있어요. 

학외대응국은 ‘배리어프리한 서울대 상권 만들기’가 핵심 과업입니다. 경사로설치팀과 배리어프리맵팀으로 분화되는데, 경사로설치팀은 경사로가 필요한 가게를 조사하고 제안하죠. 배리어프리맵팀은 휠체어 사용자가 비교적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들을 조사하여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현장 조사 또한 팀워크를 극대화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TF별 권역을 나누고, 한 팀을 4인으로 구성하되 휠체어 타는 사람, 휠체어를 보조하는 사람, 사진 찍는 사람, 측정하는 사람으로 과업을 부여해 각자의 역할이 하모니를 이룰 수 있게 했다.

 

 

‘나’와 ‘타인’ 모두를 위하는 일

서배공의 활동은 멤버들에게 있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새롭게 하는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김민지 경사로팀장 또한 처음부터 배리어프리 활동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지고 활동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고 얘기한다.

 

“학과 선배님이 서배공의 멤버였는데, 어느 날 학과 단톡방에 신규 멤버 모집 공고가 올라왔어요. 평소 배리어프리 의제에 관심이 있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신청했는데, 막상 활동을 시작해보니 저는 너무나 무지한 상태였던 거죠. 서배공을 통해서 정말 많이 배웠어요. 사회를 위한 활동이라고 하지만, 사실 저 역시 얻은 것들이 많아요.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잖아요. 서배공이 아니었다면 비장애인의 관점 안에서만 머물러 있었겠죠.”

 

정보민 배리어맵팀장은 그 무엇보다도 ‘실천하는 삶’을 살 수 있어 행복하다고 전한다. 

 

“사회 시스템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효율’ 혹은 ‘합리적’이라는 포장으로 누군가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들이 당연시되는 경향이 있잖아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힘을 보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학생인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너무 미미했어요. 하지만 서배공의 멤버로 활동하면서 조금이나마 누군가의 삶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실감을 느끼고 있어요. 더불어, 저도 성장하고 있고요.”

 

과제와 시험, 아르바이트, 대외활동, 취업 준비 등 정신없는 와중에도 서배공 학우들이 이렇게 시간을 쪼개 배리어프리 활동을 이어나가는 근간에는 ‘내가 무언가 개선하고 있다’는 보람이 존재했다. 같은 관심사를 가진 학생들이 함께 폭염을 버티며 상권을 조사하고 경사로를 설치하는 등, 현장 중심의 땀 흘린 경험과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이들에게는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아직은 차가운 세상

물론 서배공의 이러한 활동들이 늘 환영받는 것은 아니었다. 최근 현장조사를 위해 찾아간 한 피트니스센터는 ‘장애인이 여기를 왜 오겠냐’며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매번 마주하지만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여전히 들을 때마다 상처가 되는 말들이다.

 

“사실 악한 의도가 있으셔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니거든요. 현장에서 활동하다 보면, 대부분의 차별은 악의가 아닌 무지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아요. 장애인을 배제한 환경에서 영업해온 것이 지금까지의 방식이었는데, 갑자기 개선을 이야기하면 불쑥 그런 반응을 보이시는 것도 이해가 돼요. 

비단 사장님들만 그런 것도 아니에요. 서배공의 활동내용을 SNS에 공유하면 젊은 친구들도 ‘처음 듣는다’는 반응이 많거든요. 얼마나 우리 사회가 배리어프리하지 않았는지, 비장애인의 관점으로 구축되었는지 보여주는 사례죠. 그래서 ‘환경 개선’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인식 개선’인 것 같아요.”

 

협조는 하지만, 장애인의 권리에 동참하는 차원이 아닌 ‘내가 그냥 한 번 도와준다’는 사장님들의 시혜적 반응 역시 서배공 멤버들을 기운 빠지게 하는 모습 중 하나였다. 인식의 개선이 전제되지 않은 일회성의 도움은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동참해주시는 사장님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어요. 한 업체는 저희와 소통한 이후부터 배리어프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지속적으로 가게 환경을 개선해주셨어요. 경사로를 설치하고, 테이블 간격을 넓히고, 휠체어 사용자가 방문하면 도움까지 주실 정도로요. 누군가의 관점을 변화시키는 일은 서배공이 계속 가져가야할 핵심 미션인 것 같아요.”

 

 

더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가다

최근 서배공은 그들의 활동에 영감은 받은 타 대학 학생들의 연락을 받고 있다. 배리어프리한 학교내외 환경을 구축하고 싶다는 그들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사업을 운영하는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작하고 배포할 계획이다. 

 

연대, 홍대, 이대 등 신촌 권역에 위치한 대학들과는 협력 방안이 구체화되고 있다. 처음 서울대 장애 학우를 위해 시작했던 일들이 관악구 주민의 삶에 변화를 불러왔고, 이제는 수도권 전체로 조금씩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배리어프리한 학생사회를 위한 가이드라인’의 제작과 배포를 마쳤어요. 학생 회의에서 대체 텍스트를 활용하는 방안, MT 등의 행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장애 학우의 관점에서 꼭 필요한 내용들이 담겨 있죠. 이 가이드라인이 현장에서 잘 활용될 수 있도록 열심히 알리고 전파할 계획입니다. 더 이상 소외되는 학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모두가 원활한 ‘관계맺음’으로 대학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서배공이 앞장서려고 합니다.”

 

호소에 머물지 않고 지속적인 소통과 현장 중심의 활동을 통해 주변부를 환하게 밝히는 서배공. 그들의 본격적인 항해는 어쩌면 지금부터 시작일지도 모른다. 지지와 응원이라는 바람을 맞아 멀리, 더 멀리 나아갈 수 있기를, 그리하여 그들의 목표, ‘배리어프리의 보편화’라는 종착지에 부디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